SKEPTIC KOREA, VOL26, 우주를 이루는 근본 힘들에 대하여

 

 

 

 [노화 치료 시대의 서막에서]

 실제로 노화 연구의 시작은 1961년에 발표된 세포 모델in vitro 연구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연구에서 처음으로 체외 배양 세포의 분열 능력에 한계가 있음이 밝혀졌으며, 이 발견 이후 30년이 지나서야 세포의 분열 횟수를 기록하는

‘텔로미어telomere’라는 타이머가 염색체 끝부분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텔로미어는 세포가 분열할 때마다 조금씩 짧아지며, 일정 길이 이하로 짧아지게 되면 세포 분열을 정지시키는 알람을 작동시킨다. 반복된 분열로,

즉 나이가 들어 분열이 멈춘 세포를 ‘노화 세포senescent cells’ 라 부른다.

 

 

 [가짜 뉴스의 시대, 진실은 저 너머에 있는가?]

 미국 민주당 원로 정치인 팻 모이니핸Pat Moynihan은 “모든 사람이 자기만의 의견을 가질 권리는 있지만 자기만의 사실을 가질 권리는 없다”라는 아주 멋진 말을 남겼고, 지식인들은 이 말을 끌어다 가짜 뉴스를 비판했다. 하지만

모이니핸은 가짜 뉴스가 논쟁이 되기도 전인 2003년에 죽었고 게임의 룰은 바뀌었다.

 

 데이터는 어떤 주장도 증명할 수 있다. 억지 주장을 증명할 진짜 데이터는 얼마든지 있다.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로널드 코스Ronald Coase는 데이터의 특성을 이렇게 정리한다. “데이터를 오래 고문하면, 그 녀석은 어떤 말이라도

자백한다.”

 

 학창 시절 ‘칭찬은 식물을 잘 자라게 하고 물을 건강하게 만든다’와 같은 유사 과학 내용이 방송에 나오거나 교과서에 버젓이 실린 적이 있다. 돌이켜보면 생각할 것도 없이 사기가 확실하지만(일단 물과 식물이 각종 언어에 능통해야

한다), 당시 사람들은 이 실험 결과를 별다른 의심 없이 받아들였다. 어떻게 이런 유사 과학이 아무런 필터링 없이 유행할 수 있었을까? 그건 이 가짜 실험이 사회적으로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관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운 말과

칭찬을 장려하는 데 누가 토를 달겠는가. 만약 반대 결과가 발표됐다면, 사람들은 금세 진위 여부를 확인했을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어차피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알고 퍼나르는 뉴스란 다 이 정도 수준이라는 것이다. 중복 체크는 하지 않는다. <스켑틱> 독자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내가 직장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대화 수준은 “네가 그렇게

말하는 걸 보니 넌 A형이구나” 정도다. 

 

 우리에게 가짜 뉴스가 없는 미래는 없다. 중요한 건 진실이 밝혀진 후 얼마나 솔직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절대 인정하지 않는다. 인정하지만 않으면 어쨌든 대안적 진실을 세울 수 있다. 그래도 안 되면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래, 중국이 김치는 자기 거라 안 했겠지. 그런데 다른 건? 다른 건 했잖아. 코로나 퍼트렸잖아.” 이렇게 가짜 뉴스는 목적을 정확히 달성한다.

 

 

 [탁란하는 뻐꾸기의 속사정과 양육의 비극]

 인간의 경우, 아버지가 남의 자식을 ‘모르고’ 키울 확률은 약 3퍼센트 정도다. 이걸 높다고 해야 할지 낮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무튼 일부 뻐꾸기 종의 95퍼센트보다는 훨씬 낮다.

 

 

 [질주하는 무법자, 암의 유전학]

 암 세포는 왜 그리고 어떻게 출현하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다세포 생물의 몸에서 끊임없이 작용하는 진화의 압력 때문이다.

 

 다세포 생물은 비정상적인 세포를 제거하는 세포 자살 프로그램인 아폽토시스를 활용한다. 암 세포는 아폽토시스를 회피할 수 있어 무한히 증식하게 된다.

 

 

 [패턴을 찾는 뇌, 음모론에 취약한 뇌]

 1920년대에 프랭크 램지Frank Ramsey가 창안하고 팔 에르되시Paul Erdos에 의해 크게 발전한 램지 이론의 핵심 개념은 임의의 요소들이 특정 형태로 배열되게 된다는 것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충분한 구성 요소(많은 수는 필요치

않다)가 주어지는 경우 흥미로운 패턴이 반드시 나타난다.

 

 여덟살 때 맹장과 편도선 수술을 한꺼번에 받은 나는 지루한 회복 기간 동안 병원 침대 위의 방음 천장 타일을 올려다보며 시간을 보냈다. 흰 타일의 표면에는 조그만 구멍들이 무작위로 흩어져 있었다. 밤하늘의 별 무리에서 동물의 

형태를 보듯, 나는 흩어진 구멍에서 이미지를 찾아냈다. 사람 얼굴이나 말의 모양을 한 번 발견하고 나자, 천장을 볼 때마다 그 패턴들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덟 살 나이에도 나는 그 이유가 궁금했다.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를

보는 사람이 나 하나뿐일까? 이런 현상을 가리키는 용어가 있기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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