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쓴다, 정희진, 교양인, 2020(전자책 발행)

 

 

 인간은 모차르트처럼 네 살부터 작곡을 하고, 강·약을 조절하는 피아노를 연주할 수도 있는 존재다. 수많은 엘리트 스포츠 선수들처럼 유년 시절부터 ‘스케이트’를 탈 수도 있다. 그러나 네 살부터 글을 쓰는 사람은 없다(낱말을 익힐 수는 있다). 글은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 그 말이 생각으로 조직되고 그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언어가 있어야 가능하다. 이 세 사지 요건은 적어도 10대가 되어야 가능하다.

 

 

 영어 단어 무기(arms)의 어원은 팔이다.

 

 

 “노무현은 세례받은 천주교인이었지만 종교에 열성적이지는 않았다. 2002년 대선 후보 시절 김수환 추기경을 만났을 때, 1986년 부산에서 송기인 신부로부터 ‘유스토’라는 세례명을 얻었지만 성당에 자주 못 나가서 종교란에 무교라고 쓴다고 솔직히 고백했다. 김수환 추기경이 ‘하느님을 믿느냐’고 물었고, ‘희미하게 믿는다’고 답했다. 추기경이 확실하게 믿느냐고 재차 묻자 노무현은 잠시 고개를 떨구며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는 프로필 종교란에 ‘방황’이라고 쓰겠습니다.’” 

 

 

 삶은 본질적으로 비극이다. 이 사실처럼 우리가 자주 잊는 현실도 없다. 기억하기엔 너무 벅찬 숨소리인가. 슬픔과 우울은 소비의 적이다. 삶의 비극성에 대한 망각과 무관심이 우리를 자본주의를 향한 환호로 이끈다.

 

 

 가짜 유서(인구학적 표본에 따라 유서를 쓰게 함)와 진짜 유서를 비교한 연구가 있었는데, 확연한 차이가 있다. 진짜 유서는 현실적이고 전형성을 띤다. 목적이 분명한 글이기 때문이다. 

 

 

 거리에서 하는 노동은 쉽지 않은 일이다. 전단지 아르바이트와 피시방 밤샘 일은 저임금 알바 중 하나다. 가출한 이후 ‘원조 교제’와 성 산업에서(‘도’) 외면당한 10대 소녀를 상담한 적이 있다. 그는 편의점이나 패스트푸드 알바가 꿈이다. 나더러 길거리에서 전단지 돌리는 사람이 있으면 꼭 받아달라고 당부했다. 수십 장을 그냥 버리고 싶은 유혹, 받지 않는 사람에 대한 분노, 춥고 더운 날씨의 어려움, 빨리 집에 가고 싶은 마음, 세상 모든 사람이 자신을 귀찮아한다는 비참함이 일이 끝난 후에도 이어진다. 상상력은 지구 밖에서 갑자기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보이지 않았던 곳을 생각하려는 마음이다. 전단지를 기꺼이 받아주는 작은 선행은, 그들의 노동 상황에 대한 큰 상상력이 있어야 가능하다. “이 세상에 부족한 것은 사랑이 아니라 상상력이다.”

 

 

 죄는 사회적 판단이지 개인의 양심, 무지 여부가 아니다.

 

 

 인가이 변하는 경우는 두 가지밖에 없다. 하나는 상대방이 저항할 때이고, 나머지는 자신이 고통을 받을 때다.

 

 

 나는 ‘여성’이고 나이들어 가고 있다. 이제 ‘나이든 여성에 대한 혐오’가 기다리고 있다.

 

 

 평화운동가인 어느 수녀님의 말대로 ‘평화로운 대화를 하려면 속에서는 불이 나는 법’이다. 

 

 

 ‘우뢰와 같은 박수 소리’는 음성 언어에서만 가능한 표현이다. 수어에서 박수는 두 팔을 들어 손을 반짝반짝 흔드는 ‘고요한’ 행위다.

 

 

 우리는 왜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가. 답은 간단하다. 과거가 나보다 세니까. ‘과거와 나’라는 저울이 있다면 압도적으로 과거로 기울어진다. 균형이 안 잡히니 현실 적응이 안 되고 아프고 스스로 세상을 버린다.

 

 

 지금 이 시대를 견디는 요령 중 하나는 매사에 반응하지 않는 것이다. 아파도 위로를 구하지 않으며, 남의 고통도 모른 척한다. 내가 당하는 모욕과 상처, 타인의 호소, 분노와 절망의 세상사에 반응하다가는 열사(열받아 죽음, 熱死)하기 십상이다. 반응은 용감하지만 두렵고 책임져야 하는 삶이다.

 

 

 성폭력 피해 여성을 상담하면서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가 “변호사는 어떻게 구하나요?”다. “당신은 피해자고 우리는 국가를 상대로 해서 가해자를 처벌해 달라고 요구하는 겁니다. 검사가 우리 변호사예요, 변호사는 가해자가 구하는 거예요.” 이토록 상식적인 대답을 해야 하는 비상식적인 상황에 나는 절망한다.

 

 

 그간 친구는 우울증보다는 암이 낫다고 ‘노래를 불렀다’. 우울증은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병이다. 우울증은 ‘죽어 가는’ 몸이고, 말기 암은 ‘죽을 지도’ 모른다.

 

 

 ‘암환자에게 해주기 적당한 말’은 없다. ‘암환자’는 포괄적인 실체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느낌표는 필자)

 

 

 국가(nation)의 어원은 낳다(nate)

 

 

 상처는 재해석될지언정 사라지지 않는다.

 

 

 빗소리는 비의 지문이다. 비가 닿는 곳에 따라 빗소리는 만 가지 소리를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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