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으려고 살기를 그만두었다, 허새로미, 봄알람, 2021(전자책 발행)

 

 

 딸이 겪는 가족은 아들이 겪는 가족과는 다르다. 마치 같은 얼굴의 왼쪽과 오른쪽이 미묘하게 다른 것처럼, 그 미묘한 차이를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소름이 끼치는 것처럼. 그렇게 얻은 기억들은 극복하기 힘든 결절이 된다.

 

 

 주양육자가 내게 가졌던 태도를 하나의 형용사로 표현하자면 아마 ‘지나친’일 것이다. 지나치게 기대했고, 지나치게 반응했고, 지나치게 실망하고, 지나치게 미워하고, 또 지나치게 열광하는.

 

 

 현대 교육은 불행히도 효율적인 소시오패스 배출 코스와 양심적인 문명인 양성 코스를 완벽하게 분리하는 방법을 찾지 못했다. 모두가 약간씩 분열된 상태로 대학을 졸업한다.

 

 

 비싼 돈 들여 먹여놨더니, 공부 시켜놨더니, 운동 보내놨더니, 도대체가 투입한 만큼 산출하지 못하는 저 미지의 인간을 향해 불쑥불쑥 솟아오르는 증오 감정을 양육자들은 헤아려보지 않았을 것이다. 자식을 미워한 이후에 느끼는 죄책감과 또 반발심처럼 솟아오르는 끈적하고 어두운 종류의 애정에 대해서도 마치 영화관에서 스크린을 통해 보는, 돌아버린 외국인 엄마만큼 자신들과 먼 이야기라 생각했을 것이다. 애초 가족계획을 세우기 전에, 투입하되 거둬들이지 못한 만큼 가엾고 허무해지는 그들 자신의 인생과 자식 사이에 어떻게 거리를 유지해야 하는지를, 아파트 사기 전에 대출 이자 계산해보는 정도만큼의 진지함으로도 염려해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조건 없는 사랑은 조건이 없기 때문에 혈연을 조건으로 삼지 않는다. 너는 내가 세상에 존재했다는 증거이므로 무언가를 증명함으로써 살아있는 값을 하라는 치졸한 욕망을 투사하는 것을 조건 없는 사랑이라 부르지 않는다.

 

 

 집을 나가라는 건지 절대 나가지 말라는 건지 널 미워한다는 건지 사실은 사랑한다는 건지 알 수 없는 신호를 보내는 가족을 떠나는 일이 내게는 정말로 중요했다. 

 

 

 집에 돌아와 나갔다 온 차림 그대로 침대에 누우면 그때부터는 돌아눕는 것도 싫었다. 

 

 

 혼자가 된다는 데에는 뭔가 상처를 후벼 파는 데서 오는 것 같은 쾌감이 있다. 

 

 

 매우 선량하고 똑똑한, 세상에 기여할 것이 많은 여자라도 정신적으로 힘들 때 다른 여자를 ‘감정 쓰레기통’으로 쓰는 일은 정말 흔하다. 조금 친해졌다 싶으면 순식간에 일어나는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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