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Philosopher, VOL.15
우주를 생각한다
큰 틀에서 보면 암흑 물질과 블랙홀이 은하들을 결집시키고 붙드는 것이 맞다. 그러나 우주 전체를 붙들고 있다고 보기는 조금 힘들다. 10여 년 전 새롭게 발견된 암흑 에너지의 존재 때문이다. 암흑 에너지는 암흑 물질에 대항하는 힘이다. 암흑 물질이 끌어들이는 힘이라면 암흑 에너지는 밀어내는 힘이다. 결국에는 암흑 에너지가 암흑 물질보다 강력해져서 우주 전체가 더 멀리 확장하게 된다.
이를테면 방사선이 심해질 때를 대비해 동굴이나 지하에 들어가 살아야 한다. 우주선 안에도 피신할 공간을 따로 만들어야 한다. 우주에 산다는 것은 생각과 달리 꽤 고달플 수 있다.
우주 관광이 아직 멀었다고 생각하는 건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태양계 행성에 식민지를 만들려면 안전을 위해 장비를 바리바리 챙겨가거나 지하 깊숙이 숨어 살아야 한다. 그런 게 사람들이 꿈꾸는 파라다이스는 아닐 것이다.
은하수 중심에는 태양보다 400만 배 더 큰 블랙홀이 있다.
지구에 있는 모래알 개수보다 우주에 있는 별의 개수가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달에는 모두 19만 9,212kg에 달하는 인공 물체들이 있다. 이런 인공 물체에는 소련의 루나 2호(소련은 이 탐사선을 충돌선으로 만들었으며 1959년에 일부러 달 표면에 충돌시켰다)부터 중국의 청어 5호(현재 중국이 가동 중인 무인 달 탐사선)의 하강 장치가 있다.
현재 지구 궤도에는 인공위성이 대략 4,987 개, 우주 잔해물 조각이 대략 1억 2,800만 개가 있다.
나는 유토피아 건설이 공상에 젖은 사업이라고 생각한다. 아울러 우리가 지구 밖 다른 곳에서 하는 일은 무엇이든 우리가 여기 지구에서 성공하고 실패한 일의 연장이 되리라고도 생각한다. 인간은 결국 인간이다. 내가 이전에 썼듯이, 우리는 “감정적이고 도덕성이 없는 이기주의자”다. 대체로, 그리고 우리 대부분에게 도덕적 잣대는 내가 “인식된 감정적 사리사욕”이라고 부르는 것에 좌우된다.
… 우리 대부분은 대체로 서로 협력한다. 우리가 인식한 단기적인 감정적 사리사욕을 채우는 데는 협력이 알맞기 때문이다. 여러 책임감 있는 사회가 다른 사회보다 다소 더 성공한 것도 책임감 있고, 투명하고, 독립적인 기관과 제도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지난해에 수많은 나라가 우주군을 창설했고, 나토NATO는 우주도 전쟁터가 될 수 있다고 선언했다. 우주군을 만든 이들이 이렇게 처음으로 우주를 전쟁터로 지정했다.
빅뱅이 무nothing에서 저절로 일어났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빅뱅은 진공 상태에서 일어났다. 이 지점에서 ‘무’와 ‘아무것도 없음not anything’을 구분해야 한다. 그 둘은 전혀 다른 개념이다.
… ‘무’란 텅 빈 공간을 아주 가까이 들여다봤을 때 상황인데, 그 공간을 자세히 보면 뭔가가 입자와 반입자로 쪼개지고 그것들이 지속적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모습이 보인다. 이런 현상은 지금 여기 당신의 방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실제로 태양에서 나온 빛이나 당신의 집 지붕에 닿은 빛의 일부는 즉시 마이크로 블랙홀이 되어 사라졌다가 다시 빛으로 변해서 당신에게 닿는다. 언제나 물질은 나타남과 사라짐을 반복한다. 혹자는 곳곳에서 작은 요동이 일었다가 거의 항상 반복적으로 소멸하는, 무한한 무의 바다를 상상할지 모르겠다. 그런데 무가 무한하다는 것은 실제로 무가 몹시 많다는 의미다. 그래서 몹시 드문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우연히 어떤 물질이 내부에 충분한 에너지와 성분을 확보하게 되어 소멸하지 않는다. 그것은 주변에서 분리된다. 그렇게 해서 우주가 탄생했다.
그렇다면 ‘아무것도 없음’은 그저 하나의 추상적인 개념이며, 말자하면 가능할 것 같지 않은 상황을 의미하는가.
그렇다.
만일 우리가 어떻게든 그 아이를 스크린에서 떼어 내면, 그의 스마트폰은 보채듯이 윙윙거리며 울려대기 시작한다. 마치 사족들 눈에 띄려는 반려동물처럼 말이다. 나는 또 한 번 저렇게 배회하다가 돌아오도록 훈련받고 있는 것이 인간인지 궁금해진다. 저 기계 학습을 수행 중인 인간이 내 아이가 맞는지도 궁금하고.
우리 아이들이 매일 얼마나 많은 시간을 스크린에 붙어 있는지는 더 이상 질문할 가치도 없어 보인다. 그들의 마음은 늘 네트워크에 연결되어 있다. 차라리 그들이 온라인상에 없을 때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지가 더 흥미로운 질문일 것이다. 그때 그들의 기분은 어떨까? 그들은 얼마나 집중을 잘할까? 그들은 어떤 종류의 금단 증상을 겪고 있을까?
우리가 이용하려고 만든 기술이 우리를 지배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도리어 재산에 대한 인식이 확립되면서 강탈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보장하는 법이 처음 만들어졌다. 그러니까 법은 정의로부터 출발한 게 아니라, 힘으로 얻은 걸 다시 힘으로 빼앗길지 모른다는 재산 소유자의 공포심으로부터 출발했다. 가진 게 많은 사람들은 폭력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홉스식의 자연 상태를 도덕적 서사로 가공해 냈다.
1884년 베를린 회의에서도 똑같은 방식으로 유럽 열강이 아프리카 대륙을 땅따먹기 하듯 나눠 먹었다. 그 땅에 사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이, 심지어 그 땅을 열강이 실제로 통치하던 게 아니었음에도.
루소의 이야기가 들려주는 결말은 자명하다. 모두의 것이어야 하는 것들에 울타리가 쳐져 소수만 그 이익을 누렸다는 것. 그런데 이 이야기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요즘에도 심해저와 달을 나눠 갖자는 말이 나오는가 하면, 가장 소중한 공간인 우리 내면의 생각과 감정까지 착취하려는 계획이 자구만 생겨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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