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얼굴, 아베 코보, 문예출판사, 2018(2판 2쇄)
빛이라는 것은 그 자체가 투명하다 하더라도 비추는 대상을 모조리 불투명하게 바꿔버리는 것 같다.
뭐든지 상관없으니 나는 얼굴 구멍을 막을 뚜껑이 필요했다.
“똑같은 신체장애자라도 손발이 불편한 사람이라면 주변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소. 맹인이나 농아들도 그다지 보기 어렵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 그러나 어딘가에서 얼굴이 없는 사람을 본 적이 있습니까. 아마 없을 겁니다. 얼굴
없는 그들은 도대체 어디로 증발해버렸다고 생각하십니까?”
그 무렵 내 심장은 껍데기를 벗고 날갯짓하려는 번데기의 예감이 들어, 마치 매미처럼 계속 울어댔다.
“…… 하지만 그 참에 생각했지. 가끔은 영화를 보는 것도 좋겠구나 하고. 거기라면 관객 모두가 배우의 탈을 빌려 쓰고 있는 셈이니까. 자기 얼굴은 필요 없지. 영화관이라는 것은 돈을 내고 잠시 얼굴을 교환하러 가는 장소거든.”
마치 빌려온 남의 관절로 걷는 듯한 발걸음으로,
…… 나는 계속 기다렸다…… 겨울 내내 밟히고 밟혀서 이제 머리를 쳐들어도 좋다는 신호가 있을 때까지는, 아무튼 기다리고 있을 수밖에 없는 보리 싹처럼 아무런 감정도 없이 그저 계속 기다리고만 있다…….
나는 기다린다고 하는 단 하나의 신경섬유밖에 갖고 있지 않은 원생동물처럼 빛도 색깔도 없는 공허한 기대에 그저 꼼짝 않고 몸을 맡기고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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