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죽어서 참 다행이야, 제넷 맥커디, 위즈덤하우스, 2023(초판 1쇄)
전에도 몇 번 아빠가 댄스 수업에 데려다주었다. 나는 한시름 놨다. 엄마가 데려다 줄 때면 누군가에게 소리를 치거나 댄스 스튜디오 주인에게 발레에서 내 역할이 작다는 식으로 불평을 쏟아낼까봐 조마조마했다. 하지만 아빠는 전혀 그러지 않았다. 그런 건 의식하지도 못하는 것 같았다. 아빠는 그냥…… 숨만 쉬는 것 같았다.
“작가는 옷차림도 촌스럽고 뚱뚱하단다. 너도 알지? 너의 여배우다운 복숭아 엉덩이가 작가의 거대한 수박 엉덩이로 바뀌는 꼴을 내가 어떻게 보겠니?”
나는 엄마의 말을 알아들었다. 내가 글을 쓰면 엄마가 괴로워하고, 내가 연기를 하면 엄마가 행복해 한다는 사실을.
나는 더 듣지 않고 문을 쾅 닫았다. 요즘 들어 참을성이 없어져서 누구한테나 쉽게 화를 냈다. 이러한 변화를 알고 있었지만 바꿀 마음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더 그러고 싶었다. 나한테는 그게 갑옷이나 마찬가지였다. 분노의 갑옷. 고통을 느끼는 것보단 화를 내는 게 더 쉬웠다.
“남자들은 말이야. 너를 잘 알지도 못한 상태에서 상처를 준단다. 하지만 여자들은……, 여자들은 너를 잘 알면서도 상처를 준다니까. 그렇다면 어느 쪽이 더 나쁘다고 할 수 있겠니?”
거식증으로 돌아가야 했다.
폭식증 앞에서는 통제력이 없어서 혼란스럽고 무기력했지만, 거식증에는 당당하고 전권을 휘두를 통제력이 있었다. 게다가 저렴했다. 내 주변엔 거식증을 앓는 친구가 몇 명 있었는데, 그들은 내게 연민을 느꼈다. 섭식 장애가 있는 사람은 누가 섭식 장애를 앓고 있는지 딱 보면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당신이 알아챌 수밖에 없는 비밀 코드와 같았다.
이젠 폭식증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더 이상 대적할 힘도 없었다. 나보다 더 강한 존재인데, 싸워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냥 받아들이는 게 더 쉬웠다.
‘체중계에서 벗어난 삶이라니!’ 바보 같은 소리처럼 들리겠지만 안타깝게도, 나한테는 맞는 말이었다. 이게 내 현실이라는 게 속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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