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지 어떤지 모르는, 마쓰이에 마사시, 김영사, 2022(1판 5쇄)

 

 

 

 현관에서 복도, 계단에 이르기까지 칙칙한 느낌의 연갈색 카펫이 물결을 이루며 깔려 있었다. 벨벳이 닳은 슬리퍼를 신고 그 위를 걸으니 광대한 카펫의 황야에 사는 무수한 진드기가 일제히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결혼은 친척을 두 배로 늘리고, 짐을 두 배로 늘리고, 싸움을 네 배로 늘린다.

 

 

 눈이나 입처럼 움직이지는 않아도 잠자코 남에게 도움이 된다는 점에서도 차양과 귀는 어딘지 모르게 비슷하다.

 

 

 나는 가나의 근황을 수로水路로 삼아 거기에 작은 보트를 띄우듯 친척의 입원이나 불행을 전할 때처럼 억제되고 평탄한 목소리로 이혼 이야기를 했다.

 

 

 가나의 메일은 아주 간단했다. 거기에 쓰여 있는 말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갓 세탁한 흰 시트처럼 무덤덤하고 그저 바람에 펄럭펄럭 날렸다.

 

 

 가나는 벌떡 일어나 얼굴에서 부품이 빠지지 않았는지 확인이라도 하듯 열 손가락으로 입과 이마와 눈꼬리와 코를 만졌다.

 

 

 혼자 사는 생활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는 집을 고치면서 조금씩 갖춰졌다. 남 앞에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말이지만, 집은 내 마음이고 몸이기도 했다.

 

 

 

 

'others'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날씨와 얼굴 _ 이슬아  (0) 2024.02.16
엄마가 죽어서 참 다행이야 _ 제넷 맥커디  (0) 2024.02.13
빌리 서머스 2 _ 스티븐 킹  (0) 2024.01.29
빌리 서머스 1 _ 스티븐 킹  (0) 2024.01.29
가녀장의 시대 _ 이슬아  (0) 2024.01.12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