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홀로 볼링, 로버트 D. 퍼트넘, 페이퍼로드, 2023(개정판 5쇄)
경제학자 로버트 프랭크Robert Frank는 나와 개인적으로 만난 자리에서 “사회적 자본은 톰 월프Tom Wolfe의 소설 ¡º허영의 모닥불』에 나오는 ‘호의 은행favor bank’과 비슷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호혜성에 가장 간단명료한 정의를 내린 사람은 소설가도 경제학자도 아니라 뉴욕 양키즈의 감독이었던 요기 베라Yogi Berra였다. “네가 다른 사람의 장례식에 가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도 네 장례식에 절대 안 와.”
정치 문제에 대한 관심과 투표 행위는 정치 참여의 형태들 중 상대적으로 부담이 별로 없는 편에 속한다. 엄격히 말해 실제로 이 둘은 사회적 자본의 형태가 전혀 아니다. 혼자서도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정당의 조직은 활력에 넘치는 반면 유권자의 참여는 줄어드는 대조적 현상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정당의 ‘소비자’가 정치에서 등을 돌리고 있기 때문에 정당은 유권자, 일꾼, 자금 기부자의 환심을 사려고 더 열심히 일하고 더 많은 비용을 써야 하는 것이다.
정치학자 시드니 버바와 그 동료들은 “정치의 전문화와 전국 규모화는 시민의 역할을 헌신적 활동가에서 수표책을 꺼내고 편지나 받는 사람으로 재규정해오고 있다”고 결론 내렸다.
영화감독 우디 앨런이 재치 있게 표현했듯 인생의 80퍼센트는 얼굴을 내미는 것이다. 시민적 참여에 대해서도 똑같이 말할 수 있겠다. ‘얼굴 내밀기’는 미국 지역 공동체의 단체 활동의 경향을 측정할 수 있는 유용한 기회를 제공한다.
우리들 대부분은 식민지 시절의 주민들이 신앙심 깊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미국에서 종교의식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연구한 학자에 따르면 사회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종교를 충실히 따르는 사람들의 비율은 1776년 17퍼센트에서 1980년 62퍼센트로 상승했다.
그 결과 미국은 헌신적으로 종교에 몰입하는 사람과 전혀 교회에 가지 않는 사람이라는 두 집단으로 선명하게 나누어지고 있는 중이다(일부 독자들은 진지한 신자와 전혀 관여하지 않는 사람은 늘어난 반면 중간 수준의 참여자는 줄어든 정치의 변화 경향과 유사한 현상을 여기서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이것이 최근 많이 논의되는 ‘문화 전쟁culture wars’의 밑바탕을 이루는 사회학적 토대이다.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자주 겪는 일은 친구들과 어울리기이다. 예를 들자면 퇴근 후 동료들과 한잔 마시기, 매주 화요일마다, 포커하기, 옆집 사람과 남의 소문 수근거리기, 친구들과 함께 텔레비전 모기, 무더운 여름 저녁의 바비큐 파티, 서점에서 개최하는 독서 모임에 참여하기, 매일 똑같은 코스에서 만나는 낯익은 조깅 동호인들과 간단하게 인사 나누기 등등이 모두 이런 일들이다. 돼지저금통에 쌓이는 동전들처럼 이런 아주 작은 투자가 모여 사회적 자본이라는 목돈을 만드는 것이다.
19세기 초 토크빌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 그는 미국인이 어떻게 서로를 이용하려는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자기 이웃을 배려하는지 보고 충격을 받았다. 토크빌이 지적했듯 미국인이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이상주의적인 무념무사의 규칙을 지켜서가 아니라 ‘올바르게 이해된 자기 이익self-interest rightly understood’을 추구하기 때문에 미국 민주주의는 작동했다.
사실상 모든 사회에서 ‘못 가진 사람’은 ‘가진 사람’보다 사람을 덜 믿는다. 아마 가진 사람들은 남에게 보다 존중받고 정직한 대접을 받기 때문일 것이다.
미국에서는 백인보다는 흑인이, 재산이 풍족한 사람보다는 쪼들리는 사람들이, 소도시보다는 대도시 주민들이, 범죄의 희생자가 되었거나 이혼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낮은 사회적 신뢰를 표출한다. 각각의 경우에 이러한 불신의 패턴은 개인의 실제 경험을 반영한 것이지 불신에 대해 서로 다른 심리적 성향을 보인 것이 아니다. 이런 사람들이 조사원들에게 대부분의 사람은 믿을 수 없다고 대답했을 때 그들은 환각에 빠져 있었던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경험을 그대로 알려주었을 뿐이다.
법학 교수 마크 갤런터Marc Galanter는 변호사의 역할 확장을 이렇게 요약한다.
신체를 순환하는 호르몬의 공급이 줄어들면 이를 보완하기 위해 인공 호르몬의 공급이 필요하듯, 변호사 역시 줄어드는 호혜성, 도덕적 의무, 동료애를 보완할 수 있는 법률적 집행 방법을 고안한다……. 변호사는 비인격적인 ‘냉정한’ 신뢰의 생산자인 동시에 구매자이기 때문에, 저렴한 비용으로 문제 해결을 가능하게 해주는 인간적 신뢰라는 경쟁자의 몰락에 따른 최대 수혜자이기도 하다.
인터넷 폭발의 시점을 감안하면, 앞에서 보았던 사회적 연계의 붕괴 원인을 인터넷에서 찾을 수 없다.
투표 참여, 자선사업 기부, 회의 참석, 친구와 친척의 방문 등등은 빌 게이츠가 아직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을 때 이미 쇠퇴하기 시작했다.
미국인의 시민적 불참을 설명해 줄 수 있는 자유시간의 일반적 감소는 지난 30년 동안 나타나지 않았다고 결론 내리는 편이 합리적인 듯하다. 오히려 이 기간 동안에 여가 시간이 상당한 정도로 순수하게 늘어났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어떤 일이 되게 하려면 바쁜 사람에게 그 일을 맡기면 된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교통안전국의 개인 교통 이용 실태조사에 따르면 미국 성인은 매일 평균 72분을 자동차 바퀴 위에서 보낸다. 시간 일기 연구에 나타난 자료와 비교하면 요리하거나 식사하는 데 사용하는 시간보다 2배 이상 더 많고, 평균적인 부모가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보다 2배 이상 더 많다.
사람들에게 과연 “(세계, 국내, 스포츠 등) 뉴스를 매일 알 필요가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그림 54>에서 보듯 대답은 그 사람이 언제 출생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1930년 이전 출생자 중 3분의 2는 대략 일관되게 ‘당연히’ 혹은 ‘대개’ 그렇다고 대답한다. 그 자녀와 (1960년 이후에 출생한) 손자 세대의 뉴스 관심도는 간신히 그 절반 정도이다.
전자 미디어의 대부분의 에너지, 시간, 창조성은 뉴스가 아니라 오락에 집중된다.
시민적 불참의 전염병은 텔레비전의 광범위한 확산 후 10년이 채 지나지 않아 시작했다. 또한 우리가 14장에서 보다 자세히 보겠지만 그 어떤 코호트에 속하더라도 텔레비전에 일찍 노출될수록 불참의 정도가 나중에 더 커진다. 살면서 항상 텔레비전에 노출되어 온 보다 젊은 세대들이 텔레비전의 습관적 시청이 높으며, 습관적 시청은 다시 시민 참여의 감소와 연결된다.
두 사람은 텔레비전 시청이 사람을 나른하게 하며, 집중도가 낮은 활동임을 발견했다. 시청자들은 다 본 후에도 수동적이고 정신이 좀 느슨해지는 기분을 느낀다. 오래 시청한 저녁에는 에너지가 덜 들어가는 활동, 아주 굼뜬 활동을 할 가능성이 높은 반면, 짧게 본 저녁에는 똑같은 사람들이 스포츠와 클럽 모임 같은 집 밖에서의 활동에 보다 많은 시간을 사용할 가능성이 높다.
내 운명은, 내가 공부하고, 약을 멀리하며, 교회에 다니느냐 뿐만 아니라 내 이웃이 과연 그런 행동을 하느냐에도 달려 있는 것이다.
고립되어 왔던 동물은 덜 고립되었던 동물보다 동맥경화 발생률이 훨씬 높으며, 외로움은 사람과 동물 모두에게 면역력을 감퇴시키고 혈압을 상승시킨다. 이 분야의 주도적 연구자 중 한 명인 리사 버크먼Lisa Berkman은 사회적 고립은 “유기체가 빨리 노화되면서 반응하는 만성적 스트레스 상황”이라고 추측했다.
그러한 직접 대면의 상호작용 없이는, 즉 직접적인 피드백이 없고, 다른 시민들의 엄밀한 평가에 비추어 자기 의견을 점검받지 않으면, 내 의견에 반대하는 그 누구에게라도 금세 화를 내고 그들을 악마화하기 쉬워진다. 익명성은 심의에 대한 근본적 저주이다.
정치학자 에일린 맥도나Eileen MacDonagh는 이 사실을 생생하게 표현했다. “인종에 기초해서 법적으로 갈라놓았지만, 모든 주민이 모든 이웃을 저녁에 초대하는 동네. 반면 인종에 따라 갈라놓지는 않았지만, 주민들 사이에는 사회적 상호 작용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 동네. 어떤 동네가 더 좋을까?” 통학 논쟁의 딜레마가 바로 이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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