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가 아프다. 음... 지금 인터넷으로 신발 한 켤레를 주문했다.

두 개의 신발이 마음에 들어서 24분 가량 고민하고 선택하고

주소 적어서 신청하고

입금 계좌 확인하고 그러는 동안 머리가 아파졌다.

다른 걸 고를걸 그랬나, 싶기도 하다.

보통 이런 건 즐기면서 해야 되는 건데...

 

인터넷 뱅킹은 지금 상태로 도저히 무리고

있다가 기계에 가서 해야겠다.

 

내 키는 183cm 이다.

약 61fit 이며

0.001137mile 이다.  

 

남자와 여자 노인과 아이를 모두 합칠 경우

한국에서 나는 키가 큰 사람 4% 안에 들 것이다.

아침에 버스에서 내릴 때 뒷문에 사람들이 몰려 복잡스러웠다.

그때 한 여자가 휙! 돌아서서 나와 부딪쳤는데

그 여자의 얼굴이 내 가슴과 배 사이에 닿았다.

깜깜했을 거다.

 

한 번은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평소와 달리

무척이나 답답한 느낌을 받았다. 왜 그런가 했더니

5명의 탑승객 중에 나보다 큰 남자가 한 명 있었다.

엘리베이터라는 협소한 공간에서 답답함을 피하기 위해

늘 고개를 살짝 든 채로 있는데

그때 늘 비어있던 공간에 누군가의 얼굴이 들어와 있어서 답답함을 느낀 것이다.

 

나란히 핫도그를 들고 걸어갈 때도

나보다 큰 사람과 함께 걸으면 꽤 답답하다.

마치 안경을 안쓰던 사람이 갑자기 안경을 쓴 느낌을 받는다.

 

세상에는 난쟁이들도 있고

난쟁이가 쏘아올린 공도 있고

허리가 굽거나 다리가 불편한 사람들도 있다.

키가 작은 많은 사람들이 있다.

 

한 번은 드럼페스티발을 구경갔는데 스탠딩 공연이었다.

이때 함께 간 사람이 그 26세의 여자 은행원이었다.

이 사람이 그때 늦게와서 가뜩이나 스탠딩 공연인지라 무대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나는 출연자들의 상반신은 볼 수 있었는데

이 여자는 인파에 막혀 카메라를 통한 화면만 볼 수밖에 없었다.

무릎을 굽혀 이 여자와 똑같이 시선을 낮췄는데

한 밤중에 나도 모르게 깊은 물에 빠져버린 그런 느낌이었다. 

답답함을 넘어 무섭기까지 했다.

 

이 여자는 씩씩하고 가끔 내게 술을 사주고 담배를 멋지게 피며

술에 취하면 늘,

스튜어디스에 채용된 것을 포기하고 보다 좋은 조건의 은행원으로 취직을 한

자신을 철학과 답지 않다며 비하한다.

나는 철학과 출신 여성을 채용했던 대한항공이나, 부려먹는 지금의 은행이나,

철학과 출신으로 스튜어디스에 합격하고, 은행원이 되고, 술만 마시면

줄담배 피며 괴로워하는 이 사람이나 다 같이 이상하다.

요즘은 지나친 업무 스트레스로 호르몬 이상이 생겨 치료중이라고 한다.

 

또 지금 전주에 있는 남자친구는

군대 있을 적에 정신이상증세가 있어서 제대 할 때까지 치료를 받고

고시원에 들어갔다가 1년 만에 포기하고

삼성생명 보험심사원으로 들어갔다.

늘  자신이 <메멘토> 주인공과 같은 직업이라고 떠들면서

명함 꺼내는 연습을 하고 다닌다.

 

대학 친구 하나는 별명이 '철원의 왕자'인데

아버님이 철원에서 이장을 하신다.

고구마처럼 생기고 소만한 덩치를 가지고 있다.

4년 째 경찰공무원 시험을 치고 준비하고 공부하고 그런다.

한 해는 자신만만하게 시험 준비를 마치고 시험을 기다렸는데

공부를 너무 열심히 해서 그 사이 시력이 나빠져서 그 해 시험을 칠 수 없었다.

경찰시험에는 시력과 신장, 그런 것들의 제한이 있다고 한다.

라식수술을 받은 뒤에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내가 제주도에서 3일만에 돈이 떨어져

승마장에서 먹고자며 돈을 벌고 있었을 때(대학 1학년 여름)

그 승마장에 어느날 30대 초반의 아저씨가 찾아와 일을 시작했는데

분위기가 묘했고 말이 없었다.

어느날 말에게 줄 꼴을 베어내고 있었는데 이 아저씨가 내게

너는 뭐할 생각이냐,고 물어서

잘하면 몇 년 안에 1월 1일자 신문에 날지도 몰라요. 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시 쓰냐?"고 물어서 깜!짝! 놀랐다.

자신이 시인이며 시집도 냈으며 떠돌아다니는 중이라고 그러더니 어느날 사라져버렸다.

 

바로 그 승마장에 어느날 때국물이 말라붙은 채로

새까맣고 비쩍마른 남자애 하나가 찾아와서 일을 했다.

목포가 집인데 제주도로 가출해 나온 중학생이었다.

결국은 수소문 끝에 부모가 이곳까지 찾아올 기미가 보이자

역시 어느날 돈 얼마 받아서 도망가버렸다.

 

나는 아마도 8월초입에 프랑스를 향해 떠날 것이다.

프랑스 말로는 밥달라고도 못하는데다가

토익점수 384점의 실력. 

프랑스 도착한 시점에서 남는 돈은 대략 40만원 정도.

돌아올 비행기표는 살 돈도 살 마음도 없다.

 

이틀 전 밤에는

프랑스에서 귀걸이를 잃어버리고 귀가 너무아파서 우는데

주위에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어서 괴로워하는 꿈을 꾸었다.

 

내가 첫 여행지를 프랑스로 정한 이유는

프랑스에서는 밤이 되면 노숙자들에게 담요를 나눠준다는 얘기를

보험심사하는 남자친구녀석에게서 들었기 때문이다.

다만 어머니가 많이 아프셔서

차라리 일찍 돌아가시든가 늦게 돌아가시지 않고

정확히 그때 쯤에 위독해지실까봐 걱정이다.

 

나의 여행을 보고 동생은

"뭐야, 도망가는 거야?" 라고 비꼬는데 그 말이 맞을 지도 모른다.

짐은 최대한 가볍게 등에 매는 가방 하나만 가져갈 생각이다.

필요한 것은 사거나 훔치거나 구걸해야지.

아, 무섭다.

나는 훔치거나 구걸해본적이 없다.

혹시 몰라서 져글링 공던지기와 데빌스틱을 다시 연습하고 있다.

지금 호주에 있는 한 강원도 여자녀석은

길에서 데빌스틱을 돌리면서 돈 몇 푼 받았다고 자랑이다.

 

사는 것도 무섭고 죽는 것도 무섭고 여행가는 것도 무섭다.

그래도 그냥저냥 지금 이대로 사는 것이 가장 안무서웁겠지만

무섭더라도... 좀 감동적일 필요가 있다, 내 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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