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복을 입고 나왔다.

세 살 아이처럼 발길질하는 햇살 속에서

양복 입은 내 모습이 멋져보였다.

 

매일 양복 입고 다니는 샐러리맨들을 보면

저들 인생만큼이나 그 옷들도 참 후져보이고

안어울리고 어색하고 짜리몽땅하다는 느낌을 받는데

정작 내가 양복을 입는 순간에는

우와, 길을 걷다가 내가 나를 보았더래도

참 멋있어 보였을 거라는 착각에 즐겨 빠지고는 한다.

 

오늘 밤에는 장례식장에 가야한다.

본래 예식장소 가는 것을 싫어해서

결혼식이건 장례식이건 거의 간 적이 없다.

나는 결혼 할 마음이 없는 데다가

가족의 장례식에 누구를 부르고 싶은 마음도 없기 때문이다.

 

마크 트웨인은

자기 아내가 죽었을 때 다른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장례를 치렀다고 하는데

나중에 친구들이 화가나서

너는 왜 가장 친한 우리들에게까지 그런 슬픔을 알리지 않았느냐, 했더니

마크 트웨인은

"이건 내 슬픔이다. 너희들에게 나누어 주고 싶지 않다.

아내를 향한 사랑만큼이나 아내를 잃은 슬픔 또한 온전히 모두 내것이다."

라고 했다고 한다.

 

그렇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 몸서리치게 슬프다면

내 삶에 이런 슬픔이 몇 번이나 찾아온다고 이 귀한 슬픔을

나누어주겠는가.

 

이러한 슬픔은 애정을 통해 나오며

긴 시간 이 사람과 내가 함께 만들어온 애정의 힘으로

크나큰 상실의 슬픔이 찾아오는 것인데, 왜 이 사이에

이물질을 넣어 슬픔의 농도를 떨어뜨리는지 알 수가 없다.

 

한편, 내 가족이 죽었지만 그리 슬프지 않다면

나조차 그리 슬프지 않은 장례에 왜

관계 없는 사람들을 끌어들여 그들의 지갑을 축내고

우울한 어깨짓을 하도록 만드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오늘 나는 멀리 지방까지 친구 아버님의 장례식을 찾아가려한다.

그 이유는, 장례식에 대한 이 친구의 가치관은 나와 다르며

친한 사람들이 오지 않을 경우 실망할 것 같기 때문이다.

보통은 이 친구와 같이 생각을 하기 때문에

내가 장례식이나 예식장을 가지 않을 때는 이로 인해

이 친구가 실망을 하더라도 상관없다는 마음을 먹는다.

그러나 오늘 나는 이 친구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

 

어쩌면 한국의 장례는

다만 상대방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이유로 지탱되는 지도 모른다.

더불어 축의금 얼마와 조의금 얼마가 다음 번 내 차례가 되었을 때 돌아온다는

품앗이 같은 개념으로 지탱되는 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장례도 일처럼

결혼도 일처럼 한다.

심지어 조문객이나 축하객들도 일처럼 오간다.

 

때로는 그곳에서 비지니스가 이뤄진다.

 

나는 절을 몇 번 해야하는지를 인터넷에서 찾아보고

조의금을 낼까말까 생각한다.

일단 내 가족 누가 죽었을 때 내 친구들에게는 소식을 숨길 생각이다.

그러므로 내가 조의금을 돌려받을 가능성은 적다.

뿐더러 돈이 없다.

 

조의금은 형편이 될 때 되는 만큼 내고 형편이 어려울 때는 안내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런데 한 편, 친구가 슬픔을 당했는데 무리해서라도 내가 조의금을 내야한다는 생각이 든다.

음. 여기서 다시 무리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순간이다.

그런데 무리해서 내더라도 내가 낼 수 있는 액수는 3만원~ 5만원 사이이다.

요즘 시세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평균 액수가 이정도 될 것 같다.

나는 늘 평균치를 기피하는데

내려면 가장 많이 낸 사람들 축에 들던가 가장 적게 낸 사람들 축에 드는 것이 내 스타일이다.

 

3천원을 내볼까?

 

글쎄 모르겠다. 일단 5만원을 찾아서 지갑에 넣고 떠나되 봉투는 준비하지 않기로 한다.

도착해서 내고싶어 죽겠으면 봉투를 달라고 해서 넣어서 내고

돈이 아깝고 내기 싫으면 내지 말아야겠다.

적어도, 어떤 흐름에 이끌려서 그곳에 온 아는 친구들이 다 내니까 내고

너는 조의금 안 내냐? 라는 말을 들어서

어, 내야지. 하고 내는 불상사는 없었으면 좋겠다.

 

나만 안내면 창피하니까 내는,

그런식의 불상사가 생긴다면,

나는 그곳에 가서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훨씬 많다고 할 수밖에 없다.

 

나는 아버님이 돌아가신 이 친구를 좋아한다.

하지만 이 친구 아버님이 돌아가시든 말든 관심도 없었고 지금도 그로인한 슬픔은 전혀 없다.

가족의 죽음=불행, 이라는 공식도 받아들인 바가 없다.

 

이 친구는 <청년의 심리> 수업시간에 나와 함께 발표를 했다.

그때 나는 "아버지를 향한 복수"를 발표했고

이 친구는 "사춘기 나의 가출과 방황"을 발표했다.

우리를 제외하고는 전부, 자료들을 가지고 연구 발표했고,

우리는 좀 튀어보려는 취지와(170명의 수업이었으니)

꾸준히 자료조사하는 귀찮음을 벗어보려는 취지였다.  

 

우리는 마치, 알콜중독자들이 모여 자신의 경험을 얘기하는

사회센터의 주말발표회처럼

사춘기적 우리의 고통과 증오를 덜덜 떨면서 얘기했다.

 

이 친구가 당시 가출을 일삼던 원인은 그의 아버지였다.

그런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속시원함이 없을 수가 없다.

슬픔, 후회, 안타까움과는 별개로 후련함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이 친구가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어떤 행사를 하려 하는데 도움이 필요해서

내가 가는 것이라면 내 걸음은 빠르고 날아갈 듯 할 것이다.

가장 좋은 것은, 바로 이 친구가 죽어서 내가 찾아가는 것이다.

그러면 나는 그곳에 가서 잔뜩 무리를 해서 슬픔 속에 빠져버릴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나는 무얼 향해 가는 걸음인지 모르겠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누가 죽었는데 거길 내가 왜 찾아가고 있지.

 

한 분, 한 분, 찾아와준 사람이 고맙고 소중하게 느껴진다니까

그래서 가는 거다.

이녀석더러 나를 고맙고 소중하게 생각해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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