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승
이번 역은 어머니와 자식 사이의 거리가 넓사오니 발이 빠지거나 길을 잃지 않도록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지하철 안 천장에 새가 날아다닌다 지하철이 멈추고 문이 열리면 역으로 나갔다가 문이 닫히기 전에 돌아오는 하얀
무릎이 부드러웠을 때 어머니와는 다른 것을 보고있었다 사람이 통조림 흉내 낼 때 생겨나는 피로를 나는 알지 못했다 어머니는 찌그러질 듯이 내 손을 잡고 역과 전철 사이를 건너고는 하였다 나는 발이 빠질까봐 두려웠다 어느 별인가 멈출 때마다 하얗게 날고 싶었다
지하철이 떠나고 나면 남겨진 철로 위에는 사랑이 수두룩하다 누군가 기다리는 곳까지 건너지 못하고 발이 빠져버린 사랑, 사랑, 사랑들 그 중에는 내 것도 몇 개 부러져 신음하리라 어머니, 그리고 세상이여 이번 역은 우리 사이가 지나치게 멀었으나
내가 탄 이것이 순환노선이라는 것을 안다 어깨를 털고 더러워진 사랑을 주워 다시 한 번 어머니에게로 환승을 시도해본다 저 더럽게 우는 계단 바깥까지
* 이것도 대학 때 쓴 것.
* 나는 당시 문예창작 교수님의 총애를 듬뿍(밥과 술과 학점과 추천장학금으로) 받고 있었는데, 박정대 시인이 대단하다고 칭찬하시는 것을 듣고 질투 한 적이 있다. <사당역>을 "새드 앙- " 이라고 표현한 부분이었는데, 슬픔이라는 뜻의 새드- 그리고 슬프니까 우는 소리 앙- 으로 사당역을 표현한 것이었다. 그 후로도 몇 년이나 지금까지, 새드... 앙- 하는 소리가 떠나지 않는다.
이런 식의 표현은 사실 어느 역이나, 누구나 할 수있는 것이지만, 그것을 최초로 해냈다는 사실과, 또 하나, 한국지하철 역 중 어느 역을 가지고 이름을 뒤틀고 의미를 만들어도, 그 무슨 절 같은 느낌의 사당을 한 순간 매끈한 캘리포니아 영화처럼 변화시키고 앙~ 울음소리를 팍! 집어 넣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앙~ 은 지하철이 떠날 때 나는 소리와도 같으며, 결국 지하철에게까지 그 슬픔을 연장시키는 것이다.
박정대 시인이 그 모든 역이름을 뒤지면서 새드 앙을 발견해낸 것일리가 없다. 직관- 적으로, 이거다! 해서 나온 것이다. 아무튼 나는 질투에 끙끙 앓으며 나도 언젠가 저렇게 일상 진부 속에서 충격적인 발견을 해보고 싶다고 늘 염두에 두고 다녔는데...
"이번 역은 어머니와 자식 사이의 거리가 넓사오니 발이 빠지거나 길을 잃지 않도록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헐~ 아무튼 이건 내가 찜했으니까 감탄이야 하건 말건, 그 사실을 명확히 하고 싶다. 내가 찜한 거다. 이건. 내가 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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