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B를 만나고 싶었는데 TB가 약속이 있었다. 우리는 드러나는 관계여서는 안되기 때문에 그녀가 친구들을 만나는 그곳에 갈 수 없었다. 그렇지만 그곳에 갔다. 보고싶어서.

 

TB는 명동 커피빈 세 곳 중 가장 큰 곳으로 찾아오라고 했다. 나는 명동길을 모름에도 불구하고 쉽게 그곳을 찾았다. 그 동안 명동 커피빈 세 군데를 모두 알게 되었다.

 

TB는 친구 두 명과 구석 자리에서 음료 두 개를 놓고 신나게 떠들고 있었다. 나는 TB의 좌측 대각선으로 건너 건너 자리에 혼자 앉아서 아이스 까페라떼 큰 것을 홀짝 마시면서 힐끔힐끔  TB를 쳐다보았다.

 

TB는 청바지에 흰 리본이 그려진 분홍색 티를 입고 옆구리와 등에 뽀얀 피부를 살짝 드러내고 웃고 있었다. TB 친구 중 누군가에게 의심을 살까봐 30분 쯤 지난 뒤부터는 책 읽는 시늉을 했다. 그런데,

 

여기 너무 시끄러운 거 아냐!

 

커피빈, 명동 제일 큰 지점, 점장 이름은 권혁필. 너무 사람이 많다. ORDER HERE에도 PICK UP에도 줄이 한참이 길다.

 

내 생각에여기를 찾는 이들이 눈물이 날 정도로 커피가 맛있다고 느끼기 때문은 아닌 것 같다. 조용한 휴식처도 아니고 시설이나 서비스는 다분히 패스트 푸드 업소 같다. 보수적인 프랑스인이나 영국인, 이탈리아인, 스페니쉬들이라면 끔찍하게 천박한 미국식 카페라고 침을 뱉을만한 장소이다.  

 

다만 이곳은 파티숍 느낌을 강하게 준다. 칸막이 없이 탁 트인 홀이라든지, 조명, 테라스, 클래식한 느낌의 목재 인테리어, 세련된 이미지 메이킹, 도시적이고, 최고를 지향하는 자세.

 

스타벅스나 커피 빈을 찾는 이들은 대부분 이곳 분위기를(이토록 시끄러움에도 불구하고) 즐기게 되는데, 파티장이랑 원래 떠들썩한 곳이다. 이곳에 널부러진 몹시 많은 손님들은, 이 멋지고 품격 있어 보이고, 세련된, 트렌디한 장소에 초대받아 온 듯한 기분을 느끼고, 이곳 주인나리와 동격의 존재, 선한 이웃, 혹은 친구라는 느낌을 갖는다.

 

한국의 가족 주택문화 속에서 젊은이들이 친구 집에 파티 초대 받아 가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구나 커피 빈이나 미국식 아파트 느낌을 주는 장소에 친구가 혼자 살고 있을 가능성은 더욱 적다.

 

이곳에, 초대 받은 손님들인 듯, 분위기에 도취되어 있으나 결국 이들은 남남이고, 엄밀히 말해 타켓이며 소비자일 뿐이고, 커피빈 관계자들에 의해 파악되거나 조종되고 그에 순응하고 있다.

 

이곳 손님들 중에 누구도 진짜 주인은 없다고 보여진다. 예를 들면 롯데월드에 있는 장식용 궁전에 가서 공주나 기사 흉내를 내고 돌아오는 것 같다. 이들의 집으로 돌아가는 귀가 풍경이 잠시 뒤면 버스 정류장과 지하철 플랫폼, 택시! 택시! 외쳐대는 소리 사이로 바뀌어질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슬퍼지기도 하지만, 아무렴 어때, 이들은 이런 놀이에 만족하기로 이미 모종의 다짐을 한 상태고, 나야 우리 TB 좌측에서 좌측 귀 밑에 흔들리는 귀고리나 보면 좋아 죽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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