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무미건조한 생각만 할까요, 라고 말씀하시지만
무미건조한 생각이야말로
결국 모든 생각의 귀착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요.
저 같은 경우는 아무래도 일부러 그렇게 되지 않으려고 상당히 오버해서
딴
짓을 하고 딴 생각을 하고 엉뚱한 계획을 잡는 경우가 많죠.
하지만 이 모든 행동에도 불구하고 결국 맘을 놓고 멍하니
있다보면
어딘가 커다란 흐름에 휩슬려서 무미건조한 생각안에서
편안함을 느끼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아마츄어들의 공연을
보면 특히 그런 걸 많이 느끼는데
그들로서는 없는 시간 쪼개서 생업과 더불어 나름대로 의의를 가지고
뭔가 공연을 하는데, 반응이 형편
없을 경우가 많죠.
왜냐하면 실제로 공연 자체가 형편 없는 경우가 많으니까.
그런 일을 반복해서 겪다 보면, 에이~ 나도
그냥
구경꾼 노릇이나 하는 게 맘 편하겠다 싶어지고
전문적인 식견을 지닌 비평가 내지 까다로운 관객으로서
공연 배우들 보며
꼬치꼬치 조명을 지적하고 연기를 지적하고
그렇게 무미건조해 지는 지도 모르죠.
그러니까 피데이님이 말한 것,
왜 나는
무미건조한 생각만 하죠,는
역시 피데이님이나 주변 연대인들이 다른 동시대 한국인들을
앞서 제 갈길을 빠르게 질주하는 것처럼
그
생각 역시, 쓸데 없는 시간 낭비를 줄여주고
결국 그렇게 될 생각을 미리 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죠.
무미건조한 생각을 하지
않기 위해서
결혼을 포기하고, 직장을 포기하고, 주변의 인정을 포기하고
그럴 수는 없잖아요?
(물론 나는 그렇게 할
거지만)
그러니까, 대단히 많은 상황들이,
한 달 월급의 절반을 단지 물감 사는 데 쏟는
<그녀님>이나
자신의 어머니를 자신의 어머니가 아니라 막무가내 권력자로 바라볼 수있는 <나비님> 이나,
꿋꿋이
초록색 비가 내리기를 기다리는 <초록비님>님이나,
아마도 시골에서 살고 있다고 보여지는 촌스러운 <달의궁전님>과
비교했을 때
피데이님이 그들과 다른 상황이라는 걸 알 수 있는 거죠.
상황이 다른데 왜 나는 그들과 생각이 다를까라고
생각하면 안되죠.
단, 현실적 상황의 갭을 책이나 영화나 문화매체를 통해
어느 정도 교집합 영역을 늘릴 수는
있겠지만..
제 생각에는 굳이 그럴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저는 일종의 경쟁자들로, <그녀님>,
<초록비님>, <달의 궁전님>, <나비님>을 지켜보고 있는데, 내 관점에서의 승부처는 죽음을 맞는
순간이죠.
과연, 자신의 임종을 맞이하는 그 순간까지, 나를 포함한 이들은 자기들 나름의
무미건조하지 않은 생각을 지켜올 수
있을 것인지,
과거의(그러니까 지금의) 자신이 쓴 글들을 보며, 단지, 아- 내가 이랬었구나- 하고 어색하게 감회에 젖게 된다면
탈락이죠.
그다지 낙천적이지 않은 저로서는 적어도 이들 중 한 두명은,
무미건조한 생각을 지닌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리고 그게 내가 되지 않도록 오늘도
죽을 때 얼마나 섬세하게 받아들일 수있을 지를 시뮬레이션
하죠.
어느 부잣집 아들이 천 명의 여자와 연애를 하고 모든 걸 아는 듯 거들먹 거리며
나른한 눈짓으로, 다른 이들의 연애를
다 뚫어본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살아왔다고
하더라도, 죽는 순간에 연애의 감정을 기억 할 수 없다면
15분 간 연애하고서도
기억할 수있는 어떤 뇌성마비 장애인만 못하다고 보는게
제가 정한 승부의 판단 룰이죠.
다른 분들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제가, 자연스럽게 엉뚱한 생각, 상상들을 한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매일 매일 연습하고 있다구요, 나는.
'some'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모두가 나를 보고 있다고 생각해 (0) | 2005.07.06 |
---|---|
누나 (0) | 2005.07.06 |
뒤 (0) | 2005.07.05 |
앞 (0) | 2005.07.05 |
초대받은 손님들, 이길 바랄 뿐 (0) | 2005.07.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