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B를 보러 일요일에 일산까지 성당을 갔었다. TB가 성당을 가야 하는데, 성당을 마치고 만나면 2시간이나 늦게 얼굴을 보기 때문에 내가 또 성당까지, 이번에는 TB 보다도 먼저, 갔다.
모르는 사람인 척, TB 뒤에서 미사를 보고, 줄 서서 헌금을 내고, 아멘- 한 다음에야 데이트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월요일에는 보지 못했다.
그리고 어제, 화요일에 데이트를 했다.
TB가 유수 대기업에 MB(머천다이징 관계 일이라고 한다)로 취업이 되어서 앞으로 한 달 동안
전화통화를 하기도 어렵게 되었다. 사실 그 전까지 주당 50시간 이상을 만나오던 우리는,
신나게 달려가다 낭떠러지를 만난 듯이,
급정거한 듯한, 느낌을 심하게 받고 있다.
원래는 일요일에 마지막으로 보는 거였는데 화요일에 시간이 나서 보게 된 것이고,
그때문에 월요일날부터 보지 못하는 줄로 알던 우리는 각자 나름대로
상실의 아픔을 견디려고 월요일 하루를 아주 엉망으로 보냈던 것인데
다시 화요일에 만나게 되었으니 또,
상실의 아픔을 견디려고 수요일 하루를 아주 엉망으로 보낼 것이 아닌가, 라고 우리는 생각했다.
그래서 그런지 TB는 어제
"차라리 오늘 만나지 말 걸 그랬어. 겨우 참을 수있게 되었는데..."라고 말했다.
"난 오늘 보길 잘한 것 같아."라고 간단하게 대답했는데, 그건 내 방식에는
구보식의 드리블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일본 축구만화 <슛>에 보면 일찍 죽어버린 천재 축구선수가 나온다. 이 천재 축구선수의 이름이 '구보'인데, 모든 초우수 체육고의 스카웃을 뿌리치고 무명의 고등학교 축구부에 들어와서, 즐거운, 좋아하는 축구를 하게 된다.
구보가 주장이 되었을 때, 후배들에게 한 말 중에 이런 말이 있다.
"공이 자신에게 오면 모두가 자신을 보고 있다고 생각해! 그리고 갈 수 있는 데까지 최대한 멀리 자신이 가지고 가는 거야!" 당시, 팀웍과 희생을 요구하던 초우수 체육고의 스타일과 맞서는 구보식 축구 방식이 잘 드러나는 말이다.
그래서 나는, 설사 내가 과감하게 드리블 했기 때문에 우리 팀이 진다거나,
태클에 걸려 다리가 부러진다거나 하듯이,
간신히 진정시켜 놓은 감정에 다시 상처와 그리움이 들끓더라도
만날 수있다면 언제나, 항상, 만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건, 내가 골을 넣었다거나 우리 팀이 이겼다는 기록이 아니라
내가 지금 만나고 있고, 사랑하고 있고, 살아있다는 강한 느낌을 갖는 순간만이
진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결혼이라는 기록이 사랑을 증명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결혼하는 순간의 감정이 사랑을 증명한다고 생각한다.
만약 결혼하기 전과 당시와 후의 상황이 온갖 서류와 절차와 계산과 업무와 과정과
스트레스와 후회와 짜증과 피로로 점철되어 있다면 바로 그 감정들이
그들을 증명한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내가 누군가에게 패스를 한다면, 골을 넣을 수 있을 지 모르지만, 그래도 내게 공이 온다면
모두가 나를 보고 있다고 생각해! 갈 수 있는 한 가장 멀리까지 내가 몰고 가는 거야!
마찬가지로, 누군가, 부와 능력과, 편안함과 행복제공 능력을 갖춘 누군가가,
TB에게 나타난다고 하더라도 나는 절대로! TB가 내 옆에 있는 한 패스할 마음은 없다.
내가 박주영이나 홍명보가 아니더라도 나 역시 엄연한 플레이어이기 때문에.
삼각관계, 맨 끝에 드러나지 않는 가장 후진 포지션에 있는 나지만,
그녀가 내 옆에 있는 한, 내가 가장 빛나는 플레이어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