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에게는 생리가 없고 나도 남자라서 생리가 없지만 그처럼 주기적으로

다가오는 최저의 컨디션과 리듬의 주간이 있어서

하던 일들을 전부 손 놓아버리고, 내가 이걸 뭐하러 해, 그러고

때려 치려고 하고 그럽니다.

 

오늘 오전 9시 경부터 느꼈는데, 아, 그게 왔구나 싶게. 도통 웃음이 나지 않고

활자가 찍힌 종이에 구역질이나고, 모니터는 꺽어버리고 싶고,

주변의 누가 대화를 걸면 얼굴을 잔뜩 구기고 말없이 지나칩니다.

 

숨이 잘 쉬어지지 않고 폐가 작아진 것 같고 눈은 안 떠지고 졸음은 어깨 부근에

둥지를 틀어 새끼들을 낳아 처먹입니다. 잘 하지도 못하는 욕이 생각의 간격 마다

불끈 힘을 주어 튀어 나올 듯 하고, 기생괴물이 피부를 뚫고 나올 듯 무서워서

입을 틀어막습니다. 그러고서는 결국, 두 손으로 움켜진 입술을 슬며시 움직여

시발, 개새끼들, 했는지 안했는지도 모르게 욕을 하고 쥐어짭니다.

 

어제 받아 좋아했던 아베크로비 반바지를 아침에 기꺼이 꺼내입었는데 그것이

너무 크고 못마땅해보이는 데다가 시계며 머리스타일이며 무언가를 먹어야 한다는 것

또 동일하거나 비슷한 내일을 겪어야 한다는 것에 분노가 솟구칩니다.

 

평소 내게 친절했던 사물들이 모두 사납게 보이고, 그 중에서도 컴퓨터 모니터를

세게 담벼락에 집어 던지고 칼로 북북, 긁어서, 시발, 니 본모습을 보여! 이렇게 소리칩니다.

아까부터 계속, 머릿속에서, 차라리 그렇게라도 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꾹꾹 눌러 참고, 이번에는 정말 한 번은 병원을 가볼까, 한 번은 가볼까, 이런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내 몸이 건강하다면 병원에 입원하는 건 즐거울 것 같습니다. 누워서 티비나 보다가

산책을 잠시 하고 시간 되면 가져다 주는 밥을 먹고 병원 밥 맛없다고 땡강이나 부리고

가끔씩 심심하면 간호사 찾아가서 주사를 맞고 창가에서 몰래 담배를 피우고.

 

이런 날은 가장 애착을 지녔던, 나도 모르게 그랬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확인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랬던 것을 가장 경멸하게 되기 때문이지요. 블로그. 이제 겨우 두달 정도 한

블로그가 치명적으로 밉습니다. 너무 미워서, 다 부서버리거나 불태워버리고 싶습니다.

오늘 방문자가 벌써 61명이나 되는데 이들은 여기 와서 뭘 하고, 뭘 했고, 뭘 바라는 건가,

그런 생각에 머리가 아픕니다. 내가 뭘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마! 라고 또 마음이 울립니다.

 

나는 작은 캡슐 안에 들어가 있고 어떤 무식하고 징그럽고 재수 없는 인간이 이 캡슐을

삼켰습니다. 캡슐이 녹아 바깥으로 나온 나는 위산과 위액과 침에 섞인 드러운 음식물들

사이에서 질질 흐르는 까스 틈에서 어쩌라고, 어쩌라고, 어쩌라고, 중얼거리거나 혹은

중얼거리는 척 하다가 소리를 지릅니다.

 

어째서 아까부터 자꾸 소리를 지르고 있는지 모르겠고, 그보다 오늘 내가 무슨 말을

하기는 했을까, 네, 네, 말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도 같고, 그 보다는 좀 더 많은

말을 한 것도 같고 하지만, 입술은 달라붙은 지 오래된 휴지같고, 목구멍은 짐승이 떠난

빈 동굴 같습니다.

 

마음치료사님, 마음치료사님이 생각납니다. 여기 몇 번이고 오던 사람인데, 사실 나는

은근히 그 사람이 내게 뭔가 해줄 것을 기대했습니다. 마치 옛 동화에 지나가던 스님이

어느 마을에 요귀가 흐르는 집을 방문해서 귀신을 퇴치해주는 것처럼 그렇게 내게

들러붙은 어색함, 굶주림, 불편하기 그지없음을 다 풀어주고 누가 만들었는지 모를

뇌 속의 미로를 모두 허물어서 치워버리고 공터로 만들어주기를 바라고 있었는데 이것은

그렇게 기대만 키우게 하고는 종적을 감춰버렸구나, 엉터리, 사기꾼, 사이비.

 

지나치게 현실 같았던 무례한 꿈들, 나를 상처 입히고 내 자리를 탐내는 무례한 새벽녁

악몽이 시작이었을 것입니다. 사실 진작에 찾아왔을 주기인데 계속해서 미뤄지고 미뤄지고

있었던 것이랍니다. 밥솥에 있는 찬밥이 내일 먹어야지 내일 먹어야지 하다가 일 주일이 넘게

지나고 그 다음부터는 먹지도 못할 뿐더러 내일 치워야지 내일 치워야지 하더니 결국

한 달이 넘게 그 밥솥 안에서 먹히지도않고 치워지지도 않고 또 내일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냉장고 위에는 더운날 멍청하게도 계란을 한 판이나 올려나와서 지난 번 라면에 계란을

넣으려고 깨뜨렸을 때 엉성하게 우는 소리처럼 깨지더니 잔뜩 상해 뭉쳐서 노른자가

시원스레 떨어지지 않고 무웅-하고서 늘어지기만 했습니다. 한 판이 모두 상해 버린 걸

알면서도 그걸 집어 냉장고에 넣어 두고서 또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더 상해 썩어버리는 건

못참겠고 그렇다고 치워버리는 것도 못하겠고 냉장고에 감춰둡니다. 냉장고가 감춰줍니다.

 

화장실에 필라민트 끊어진 전구는 어느 새 두달이나 그대로 방치되어 있고 이제는 하루 두 번

밖에 이용하지 않는 화장실에 들어갈 때마다 바꾸거나 갈아 끼워야겠다는 생각도 하지 않으니

크크 웃고 끼끼 웃으면서 이빨을 닦고 깜깜한 어둠 속에서 머리를 감습니다.

 

하아, 이나마도 쓰지 못하게 동료 비슷한 것들이 다가와 껄떡거리니 집어치우라고 꺼지라고

말하지도 못하고 그만 쓰렵니다. 마무리, 마무리, 어디까지나 완성도를 염두에 둔 마무리에

옭아매여서는 입술에는 13년 전 강가에서 넘어져 달라붙은 모래들을 그대로 붙여 둔 채로

무어가 달라졌고 무어가 달라진 것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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