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에서 가장 유흥시설이 잘되어 있으며 젊음의 거리라는, 전북대학로를 갔다.
사실 이틀 째 간 셈이다. 오늘은 낮부터 돌아다녔는데 만화방이 보여서 올라갔는데
이미 망해서 문 닫은 채로 먼지가 가득했다. 술집이 즐비한 제법 큰 빌딩(이를테면 중심가)에
4층에 유리문, 통유리창 인테리어에 너무나 번듯하게 있어서 어쩐지 이상하다 생각했는데
세를 못내서 문 닫은 게 아닐까 싶다.
만화가게를 하는 사람들은 무슨 마음으로 하는 것일까, 담배 연기에 대부분 구석진 자리,
책먼지, 지하인 경우가 많고, 대부분 지저분한 아저씨들이 찾고, 그런 곳에 자신의 삶을
풀러놓고 살자고 맘 먹은 사람들은.
예전에 회원제 만화카페를 생각한 적이 있다. 강남 한 복판에 크고 화려하고 쾌적한 환경에
분위기 있고 조용하고 심지어 라이브 재즈연주까지 들을 수 있는 고품격 만화가게.
이 망해버린 만화방도 그런 이상적인 만화가게의 모습을 꿈꾸다 망해 버린 건 아닐까.
역시나 대학가라 서너 개의 만화방을 수비게 찾았다. 대부분 지하에 있고, 좁고, 싸고, 묘하게
퀴퀴하고, 묘하게 가라앉은 분위기였다. 자칫 오해할 경우, 삶을 포기한 것 같은 그런 분위기.
만화가게가 시대 흐름에 맞춰 전성기를 지나 퇴로를 걷고 있는 한 편, 이보다 빨리 퇴로를
걸어온 곳이 있으니 동네 책방들, 영세서점들이다. 동네에서, 시장 한 편에서 영세서점을
운영해온 사람들은 또 무슨 마음으로 운영해온 것일까. 손님이라야 대부분, 전과나 참고서나
문제집을 사러 오는 학생들인데.
자신이 사랑하는 무엇이 번듯하게 보여지기를, 이상적인 모습을 갖춰주기를, 꼭 그 모습을 남겨
놓기를 바라는 애착이 아닐까. 동네 서점에 가던 기억 없이 커야 한다면(설사 그것이 언제나 문제집을 사러 가는 것이고, 비닐 포장된 만화책 표지에 아쉬움을 접고, 아줌마 잡지들이 신기했던 것이고, 부록들에 한눈 팔던 곳이라 하더라도) 그건 참 불행한 일이 아닐까 싶다.
언제나 그렇듯, 대형 마트와 대형 할인점과 대형 서점이 주는 것은 정서적 만족이기 보다는
브랜드적 만족(이것도 일종의 정서겠지만)이거나, 라이프 스타일적 만족(이것도 또한 정서의 일종이겠지만), 그리고 편과 이적 만족(이 또한 현대 도시인다운 정서에 포함이 되겠지만)이고,
동네 문방구와 동네 시장과 동네 오뎅가게 아줌마와 동네 구멍가게와 동네 방앗간(방아가 없는, 참기름냄새 나는)과 동네 서점이 주는 정서적 만족과는 다른 것이니까.
그런 면에서 내가 개인적으로 꼭 지키고 싶은 것 중 하나는 바로 개집이다.
개가 사는 집, 개의 주택, 혹은 개의 저택, 개의 프라이버시, 개의 눈비가리개, 개의 안식처,
개집. 나는 그것을 사랑하고 또 지키고 싶어 몸서리처진다.
손수 망치질로 만든, 손수 색을 골라 개를 만족시킬만한 색 페인트를 붓칠한, 그 안에
안락한가 모가지를 넣어보고, 튼튼한가 번쩍 들어보고, 몇 가지 장식을 달거나 명패를 달아주고
담요나 겨울 옷가지며 올 나간 뜨개질 조끼, 작아 못 쓰는 장갑이며 구멍난 양말,
그런 것들을 넣고 깔아놓은, 마당 한 켠의 이웃. 개집.
아주 어려서는 개집에 기어들어가서 개새끼들이랑 놀기도 했는데(아, 어쩌면 이것은 그저 환상일지도 모른다) 그때, 어미개 똘똘이는 지 새끼마냥 내 얼굴을 핥고는 했다. 아파트가 늘고, 개들을
방안에서 키우면서 점차 개집이 없어진다니 섭섭하다. 나중에는 개들이 핸드백 안에서 살고 있지는 않을까 싶다. 지하철에서 화장을 고치고 짖지 못해 환장한 얼굴을 하고 취업과 자식들 걱정을 하며...
'some'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불현듯 궁금... (0) | 2005.07.27 |
---|---|
물냄새 (0) | 2005.07.26 |
사랑함으로 쓰는 걸까, 사랑하지 않음으로 쓰는 걸까 (0) | 2005.07.26 |
블록버스터, 블랙바스트 (0) | 2005.07.26 |
돌까기 (0) | 2005.07.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