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창에서 돌장기판 앞에서 적수를 만났다.

가족과 놀러온 남매, 지들끼리 옥수수를 먹고 있다.

장기 둘 줄 아냐? 했더니 안다! 하기에

난 모른다! 그랬다.

 

그래서 우리는 대신 알까기를 하기로 했다.

바닥이 전부 돌맹이니까 다섯 개 씩 올려놓고 알까기를 시작했다.

무참하게 내가 졌는데, 처음에는 봐주면서 해서 몰렸고

나중에는 만회하려다가 실수만발로 끝났다.

 

이 여자아이와 함께 논 시간은

10분도 되지 않는다. 우리는 언제 또 이 지구 안에서

만나기는 만날 수 있는 걸까. 만난들 알아보기는 할 만한 그런 오늘이었던 걸까.

 

하루를 최선을 다했는가, 사람을 최선을 다해서 만났는가,

그럴 리가 없지 내가. 나는 그렇게 최선을 다해서 사는 사람이 아니다.

그치만 어느 순간, 이 여자아이가 어른이 된다는 것, 그리고 내가

아저씨를 넘어 할아버지가 된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는다.

 

왜 처음 사진기술이 발명되었을 때 사람들이 경악했는지 알 것만 같다.

이것은 사람이 변한다는 것을 무척 슬프게 만든다.

그나저나 요즘 초등학생들은 80% 가량이 안경을 쓴다더니 사실인 것 같다.

텔레비젼과 냉장고와 학습지와 방문교사와 학원들과 선생들과 학부모들이

둘러 싼 세상에서 숨을 쉰다는 것은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런 곳에서 이렇게 건강하게 크고 있는 아이였던 걸 보면, 그래 과연

알까기를 내가 진 것이 이해도 된다. 대단한 아이였던 것이다.

나는 손가락으로 돌을 까고, 돌은 내 손가락이 까인다.

내 손가락이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면 좀 더 미안했겠지?

 

역시 알까기는 하는 사람도 좀 아픈 경험이 되어야 할 것 같다.

이기는 사람이거나 지는 사람이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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