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고하건데 언제나 남들보다 늦었던 것 같다.

 

첫사랑의 경험도 늦었고, 첫 자위도 늦었고, 포경수술도 늦었고, 첫 사귐도 늦었고, 첫 키스도 늦었고, 첫 섹스도 늦었고, 시를 쓰는 사람들 중에서는 시를 좋아하는 것도 늦었고, 구구단도 늦게 외웠고, 졸업도 늦었고, 취업도 늦으며, 말도 느리고, 몸도 느린 편이고, 순발력도 느리고, 성취욕구를 갖게 된 시기도 늦었고, 사춘기도 늦게 왔으며, 결혼은 최후까지 미룰 것이며, 아마 죽음도 늦게 맞으리라.

 

그 모든 느림의 기본이자 원인이자 시작은, 현실 감각이 남보다 늦게 작용하기 때문인 것 같다.

어린 시절부터 부도가 나고, 빚이 몇 억을 넘나들고, 외할머니의 집마저 경매에 넘어가고,

문지방에 핏자국처럼 차압 딱지가 너덜거리는 경험을 하면 보통 현실 감각이 빨리진다고 보는데

나는 오히려, 한없이 현실과 멀어진 것 같다.

 

현실에 대한 불쾌감이 내가 곧 현실 속으로 뛰어드는 걸 머뭊거리게 하고 소극적으로 만드는 지도 모른다. 그러나 누누이 말했듯이 내가 이런 사람이라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내가 이런 사람으로 머물기가 어렵다는 점, 늦더라도 점차 현실화된다는 점이 내 고민거리라 할 수 있다.

 

오늘 여행사를 가서 비행기표를 예약하고 왔다.

태국항공 9월 9일 오후 5시 출발.

출발지 한국 인천공항, 경유지 태국, 도착지 프랑스. 도착시간 오전 7시.

 

왕복과 편도의 항공료 값이 차이가 별로 없기 때문에 왕복편을 끊는 것이 훨씬 이익이라고

하였으나 결국 나는 편도를 사게 되었는데, 그것은 돌아올 비행기 값도 없을 뿐더러

아무런 계획, 그러니까 언제 돌아올 것이며 그 사이에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아무런 계획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굶주림과 차별 속에서 불과 일주일만에 대사관을 찾아가거나

무엇을 훔치다가 강제 출국 당할지도 모른다.

무엇보다도 프랑스 말 한 마디 할 줄 모르며 영어도 할 줄 모르며

프랑스 옆에 어떤 나라가 있는지 물가가 어떤지, 아무 것도 모른다.

 

나는 왜 프랑스로 가려 하는 걸까, 말마따나 현실 도피일까.

한국에서 노숙자가 되느니 프랑스에 가서 노숙자가 되는 것이 더 맘이 편해서일까.

 

프랑스에 도착하면 가보고자 하는 곳은

몽마르뜨 언덕 외에 단 한 곳도 없다. 에펠탑도, 개선문도, 베르사유 궁전도, 루브르 박물관도

피곤하기만 할 것 같고 가보고 싶은 마음이 없다.

짐은 등에 매는 가방 하나 뿐일 것이고 몇 벌의 옷 말고는 아무 것도 가져가지 않을 것이다.

 

내 계획과 이상이 운 좋게 잘 맞아 떨어진다면,

그곳에서 배타적이지 않은 사람을 몇 알게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나를 무리에 껴줄 것이며, 프랑스라는 정글에서 타국인이 생존해 나가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언어와 문화와 유머와 재스츄어를 가르쳐 주고, 깡패와 경찰들로 부터

보호해 주기도 할 것이다.

 

사실, 욕심으로는 프랑스어를 배우고 프랑스 글을 배워서 프랑스어로 시를 써보고 싶기도 하다.

 

세상에는 다수의 별로 빛나지 않는 사람들이 있고 소수의 빛나는 사람들이 있다.

예를 들자면, <내 이름은 김삼순>이라는 드라마 시청률이 50%를 넘어섰다고 하는데

이 50%의 시청자들이 빛나지 않는 사람들이고,

드라마 제작자와 프로듀서, 스폰서, 배우, 스텝들이 빛나는 사람들이다.

 

세상에는 스타들이 있고 나는 스타가 되고 싶은 지도 모른다.

(아니다. 이것은 나를 기만하는 소리다.)

스타가 되고 싶은 지도 모르는 게 아니라 나는 스타가 되고 싶다.

 

방법도 모르고, 그렇다고 현실적인 탐색과 노력에도 게으르다.

어쩌면 내가 스타가 되고 싶은 것은, 스타가 되기 위한 훈련 중인 많은 예비스타들과는 다른 것 같다. 나는 춤 추거나, 노래 부르거나, 멋진 연기를 해서 스타가 되기 보다는, 내 삶 자체로 누군가를 감동시키거나 그로서 스타가 되기를 바라는 것 같다.

 

결국 다시 처음 스무 살 때의 망상처럼,

내 삶이 곧 시가 되는,

그런 걸 꿈 꾸는 것 같다. 이제 포기했다고 말은 했지만, 포기하지 않았나 보다.

 

등단이라는 걸 하고, 인터뷰 같은 걸 하게 되었을 때, 이런 식의 말을 했다.

"나는 내가 시인이 되어서 내가 쓰는 것들이 곧 시가 되도록 하고 싶었다. 그러나 포기했다. 나에게는 그 정도의 재능이 없었다. 나는 남들과 마찬가지로 시를 써서 시인이 되었다. 그것은 시인이 되어서 말과 행동과 삶이 시가 되기를 바랬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방식의 시인인 셈이었다. 시를 써서 시인이 된다는 건, 선택 받거나 타고 났다는 느낌 보다는, 그저 열심히 했다는 느낌을 받는다. 운동 선수처럼 매일 매일 트레이닝 트레이닝 할 뿐이다."

 

라고 했으면서도, 사실, 아직까지도 꿈을 꾸는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도 있고, 하루 평균 쓸모 있는 사람들 100 명 이상이 찾는 사랑 받는 블로그도 있고,

조금 신경 쓴다면 가을 쯤에는 평범하되 안정적인 직장을 얻을 것도 같고, 누군가의 말처럼, 그저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일인데, 배가 고프지도 않고, 두려운 것도 별로 없으며, 친구들도 많이 있는데,

 

왜 여길 떠나려는 걸까. 누구처럼 유학도 아니고, 연수도 아니고, 관광도 아니고, 여행도 아니다.

 

어쩌면 그건, No 카드, No 보험으로 살아왔고, 또 살아가려는 나의 태도와도 관계가 있을까.

 

아무튼 프랑스에 가면, 좀 더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고, 빛을 내는 방법도 알게 될 지 모른다.

이곳에 그대로 있다면, 빛을 내는 방법은 점점 잊어버릴테고, 혹시라도 내가 빛을 낼까봐 두려워질 지도 모른다.

 

나는 모든 것이 늦는데, 싸이월드나 블로그의 많은 유저들을 보면서도 그런 것을 느낀다. 이들은 이미 20대 초반에 외국을 나갔다 왔고, 나가 있으며, 심지어 외국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 이들은 27세 정도에 진로를 바꾸는 모험을 하기도 한다. 나는 지금까지도 진로가 없었는데.

 

어쩌면 베니스 운하까지 흘러들어가서 그곳에서 뾰족하고 달팽이처럼 생긴 배의 사공이 될 지도 모른다. 나는 그런 식으로 살고 싶다. 나는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베니스 운하를 배경으로 사진 한 장 찍고 돌아오는 사람들의 애처로운 빛이 안쓰럽다. 그들의 추억담이나 삼순이 에피소드 같은 대화에서 폐건전지를 쥐었을 때의 온기를 느낀다.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 보다 억울할 순 없을 것 같다.

아무리 늦더라도 희미하더라도 구름 속에 뜨더라도

별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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