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는 말했지, 너 자신을 알아 주시라고.
나는 모른다고 그랬지. 바쁘다고.
퇴계 선생은 그래서 날 봐, 날 봐, 하면서 5천원 짜리 안으로 들어가서 문을 닫았지.
미친 퇴계.
한 달 쯤 전 저녁 귀가길에 제기역에서 5천원과 교통카드를 내밀었지. 충전 좀 시켜 주세요.
그런데 얼방하신 아저씨가 만 원을 충전 하는 거야. 모른 척 있었지. 카드를 받아서
돌아가는데 열 걸음 쯤 걸었을까, 아저씨가 나를 부르는 거야, 아무래도 만 원을 충전 한 것
같다고 카드를 줘보래, 그러세요, 했지, 역시 만원이 충전 된 거야. 돈 더 없으시죠 하길래
네, 했지.
전화번호를 적어 달라고 해서 적어줬어. 그러고 이곳에 윤씨는 자신 뿐이 없으니 아무 한테다
말하고 오천 원을 갖다 달라고 그러더군. 네, 했지. 그때부터 고민이 시작됐어.
이걸 줘, 말어.
주자니 말야, 어쩐지 다시 초등학생으로 되돌아간 것 같아서 기분이 나빴어. 어른들이 그랬거든.
돈이나 지갑이나 물건을 주우면 주인을 찾아 주라고, 아무래도 돈을 돌려줘야 할 것만 같아서
기분이 나빴어. 그러니까, 돈을 돌려 주고 싶은 기분이 아니라, 돈을 돌려 줘야만 할 것 같은 그런
개떡같은 기분이 든 거지. 그럴 때마다 조종당하고 있다는 느낌이 드니까 좋지가 않지.
그래서, 좀 두고 보자, 하면서 한 달이 지났어. 그곳에서 다시 충전한 적은 없지. 지난 주에 전화가 왔더라고, 여보세요, 했지. 그랬더니 그 역무원 아저씨야. 돈 갖다 달래. 음, 오천 원이란 건
아무래도 역무원 아저씨에게도 제법 큰 돈인가 봐. 아니면 이분이 제법 알뜰하거나 꽤죄죄한 분이었든가. 아직 카드를 다 안썼다고 다 쓰고 재충전 할 때 갖다 준다고 그랬어, 물론 그냥 한 말이었지.
한 달 째, 생각만 하고 있어. 오천 원짜리 잔돈이 생기면 귀를 기울여 보지. 너 내가 좋니 그 아저씨가 좋니, 하면 펄럭펄럭 펄럭펄럭 뭐라고 하는데 알아 들을 수가 없어서 쉽게 결정 내릴 수가 없는 거야. 계산 대로 라면, 그 아저씨가 대신 오천원을 냈고, 쓰기는 내가 썼으니까 돈을 줘야해, 하지만 내가 대신 내달라고 한 적이 없는데, 만 원을 넣어 준 것은 분명 그 아저씨의 실수니까, 실수한 사람의 책임이기도 하지. 더군다나, 그 일로 인해서 한 달이나 계속 내가 고민을 하고 있으니까 어떤 면에서 나도 꽤 피해를 받고 있는 중이야.
어떤 선택을 해야 오천 원과 나는 동시에 행복해 질 수 있을지를 생각해. 잘 모르겠어. 함께 여행이나 다녀오자고 그랬더니 이게 또 우글우글 우글우글 그러는데, 이게 좋다는 건지, 나쁘다는 건지 알 수가 없어. 다행히 그 아저씨가 또 전화를 하지는 않고 있어. 약간은 현명해 진 것 같아. 왜냐하면 또 전화를 했다면 네, 그러면서 끊음과 동시에 결심이 됐을 테니까, 주지 말자,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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