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우울한 사람 만나는 걸 무척 좋아한다.
내가 느끼는 바로는, 세상에는 일정 질량의 우울정신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것은 대기와 바다, 땅 사이에 일정 질량의 산소와 수소와 질소와 나트륨과 철과 그런 것들이
필요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별로 필요치 않거나 환영 받지 않는 물질이라 하더라도
그 물질의 존재가 필요하다고 본다.
지구 상에 모든 나트륨이 사라질 경우, 비단 나트륨의 상실로 인한 피해 보다는
나트륨이 차지하고 있던, 나트륨만의 원자 구성에 따른 공간과 질량의 상실로 인해
지구 전체가 무너져 내릴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각기 다른 돌을 이용해 지은 건물 중간에서 별로 쓸모 없어 보이는 '메르공장 못난이 벽돌'만
골라서 빼낼 경우, 건물 자체가 무너져 버리는 것과 마찬가지의 느낌이다.
때문에, 아무리 삶의 질이 높은 나라든지, 척박한 나라든지 간에
동일하지는 않더라도 반드시 얼마 이상의 우울정신은 존재한다.
몹시 우울한 날이 계속 되어 우울정신의 소유자들이 모두 자살을 해버릴 경우,
우울하지 않던 사람들이 우울정신에 동화되어 그 자리를 어느 정도 메울 것라는 생각이다.
그렇게 지구 상에는 일정 질량의 우울정신이 존재해야만 지구가 유지 된다고 느낀다.
그리고 내가 그 우울정신의 소유자라고 느낀다.
그럴 때, 내가 우울함으로서 세상이 무너지지 않고 버텨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밝은 정신의 소유자들 또한 없어서는 세상의 성립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밝은 정신이란 곧 '삼성벽돌' 마냥, 그 자체가 쓸모 있음의 정신이다.
이들에게는 내가 여기 있어야 하는가, 라는 회의가 없다.
그러므로, 정말 내가 여기 있어야 하는가, 빠져 나가거나, 홀로 사라져버리면 안될까,를
궁리하는 '부실벽돌'이 꿋꿋이 지구 상에 포지션을 확보하고 있다는 것은,
아무래도 좀 더 감격적이고, 기대 이상의 수고로움으로 보인다.
이런 수고를 하기 때문인지, 우울정신은 쉽게 지치고 쉽게 터널 같은 곳으로 빠져버린다.
연비(에너지 효율)가 나쁘다고 할 수 있다.
우울한 마인드의 자동차를 생각해보라, 누가 그 차를 구입하려 하겠는가.
부산 한 번 가는 동안, 이 자동차는 몇 번의 정지와 회피, 숙고, 방황, 유턴, 머뭇거림 등의
작동을 하게 될 것이다. 터널 속이나 가로수 밑에서 나오려 하지 않을 수도 있다. 바다를 향해
본넷트를 쩍 벌리고 멍- 하니 멈춰 있기도 할 것이다.
아무튼, 지구에서 소외되고 싶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없으면 지구의 한 귀퉁이가 무너질
것 같은 '감'을 지니고서 우울정신을 유지한 채로 버티고 있는 나는, 아무래도 남들보다
쉽게 지치는 것 같다. 뇌가 산소를 보다 많이 소비한다고 할까.
우울정신이란 걸러지지 않은 이물질기름과 같아서 이 기름을 태우는 데에는 보다 많은
산소가 필요한 것이다. 앤크린 같은 맑은 정신, 고급기름과의 다른 점이다.
그리하여, 나는 오늘 데스비다나라는 비슷한 또래의 사람을 만나기로 했는데,
사실 어제 보기로 하였으나 연락이 늦어 오늘 보게 된 것이다.
내가 아무 것도 모르는 이 사람을 만나러 가면서도 즐거운 이유는, 틀림없이 이 사람이
우울정신의 소유자이기 때문이다. 나는 맑은 정신 사이에 있으면 맑은 정신 100에 해당하는
몫의 우울정신(물론 그 비율이 1대 100이라는 것은 아니다, 맑은정신 대 우울정신의 존재 비율을 측정하기는 어렵다.)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에 몹시 피로해진다.
그러나, 옆에 우울정신이 단 한 명만 있더라도 평소의 역할이나 부담이 절반으로 줄어든다.
더군다나, 우울정신에도 농도가 다 다르기 때문에, 비교적 농도가 적은 나의 경우
농도가 짙은 우울정신 옆에 있으면 거의 아무 것도 떠맡지 않은 듯한 편안함을 느끼게 된다.
따라서 내가 바라는 바는, 오늘 이 데스비나다가 지독하게 우울한 기운을 작동해서
나를 잠시 쉬게 해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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