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라면과 숨바꼭질을 하고 노느라 물이 다 쫄아버리고 말았다.
그 숨바꼭질의 과정은 이렇다.
1. 버너에 물을 올려 놓았다.
2. 라면을 옆에 두고 방바닥에 앉아 책을 읽었다.
3. 물 끓는 소리에 책을 바닥에 덮어두고 일어섰다.
4. 라면을 찾았다.
5. 라면이 보이지 않았다.
6. 한참 동안 찾았다.
7. 덮어놓은 책 밑에 라면이 숨어 있었다.
이것은 적어도 내 사고가, 얼마나 단편적이며 불확실하고 믿지 못할 것인지를 보여주는 예이다.
예전에 족구나 배드민턴 등 네트 경기를 하다보면 항상, 누구 눈에는 IN이고 누구 눈에는 OUT인
상황이 발생하고는 했다. 그것은 누가 사기를 치거나 거짓을 말해서가 아니라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다만, 그 상황에서 자신은 결코 틀렸을리 없다고 버럭 화를 내며, 결코 자신이 틀렸을 가정을 하지 않는 사람은 참 더러워보인다. 애들도 그런 애들은 더럽다.
일본 만화 중 <DRIVE>라는 만화가 있는데, 주인공이 멀티 스페셜 드라이버로서 잠수함부터 오토바이까지 운전 못하는 것이 없는 드라이버이다. 적어도 그 만화에 따르면, 주인공은 그 '탈 것'들의 말을 듣는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대답하라! 생명을 불어넣어주마."
결국, 어제의 그 라면은 잔인하게 배가 찢겨져 끓는 물 속에 들어가 익혀져 산산이 흩어져서는 내게 먹히고 말았지만, 그 혹은 그녀에게 생명이 있었다면, '모든 사물에는 스스로의 의지가 있다'는 말이 맞다면,
그저 나를 피해 숨고 싶었던 걸까, 숨바꼭질을 하며 함께 놀고 싶었던 걸까.
(그)라면, 혹은 (그녀)라면에게, 다른 사물들에게 나는, 피하고 싶은 상대일까, 함께 놀고 싶은 상대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