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마스터 키튼을 처음부터 다시 보고 있다.
몹시 우아한 만화라고 생각한다.
나는 가수 이소라를 좋아하는데, 그것은 가수 이소라가 좋아하는 만화와
내가 좋아하는 만화가 많은 부분 겹치기 때문이다.
이소라는 한 때, 가장 행복한 순간을,
보고 싶던 만화책을 양 손에 들지 못할 만큼 잔뜩 들고 집에 와서
커튼을 모두 닫고, 음악을 들으며 만화책을 볼 때라고 했다.
물론 이때의 집은 이소라 혼자 뿐인 집이다.
요새 내 삶이 무기력한 이유 중 하나는
국내 유통되는 어지간한 만화를 거의 다 봤고
눈이 높아져서 어지간한 만화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고
(영화도 마찬가지다. 스테이를 캔달잭슨 와인에 비교하면 새드무비는 싸구려 땅콩맛 과자라고 할 수있다. 싸구려 땅콩 맛 과자를 7천원에 맛보는 건 속 쓰리는 일이고, 자신의 선택에 대해 자책하게 되는 행동이다.)
<충사>, <리얼>, <베르세르크>, 이런 만화들의 후속 연재나 기다리는
나날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가장 만화책에 깊숙이 빠져있던 중고등학교 시절에
꿈이 둘 있었는데
하나는 비 오는 날 여자친구와 한 우산을 쓰고 걷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만화를 나만큼 좋아하는 여자친구와 마주앉아 만화책을 보는 것이었다.
이 두 개의 꿈을 하나로 합치면 완벽하기 그지 없게 되는데,
비 오는 날 둘이 손잡고 한 우산을 쓰고 만화가게에 가서
만화책을 빌려와서 음악을 들으며 고구마피자를 먹으며
방바닥에 나란히 엎드려서 만화책을 보는 것이다.
살면서 느끼게 되는 것은,
사람은 저마다 취향이 다르고
어렸을 적 꿈 꿨던 것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래도 참, 서로의 꿈이 다른 것까지는 나쁘지 않은데,
때때로 자신의 어렸을 적 꿈을 지금의 자신이 부인하거나
"그땐 어렸기 때문에"라고 뒤돌아서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정말,
세상을 더럽게 만든다.
만화가 중에는, 영화와 마찬가지로 상업적 토대를 벗어날 수 없는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영화와 마찬가지로, 놀라운 작가의식과 감수성을 보여주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대부분 어려서 만화가가 되기를 원했고 그렇게 되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만화가는 상당한 비주류 직종이었고, 아직까지도 그렇다.
나는 10년 전에도 좋은 독자이고 싶었고, 지금도 그렇다.
만화는 나를 행복하게 해주었던 적이 많기 때문에,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준다는 것은 고도의 재능을 필요로 한다, 부모라 해도
자식을 행복하게 해주기는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나도 만화를 행복하게 해주는 좋은 독자가 되고 싶다.
근래, 고민이 되는 것은,
내가 무언가를 써나가는 입장에서, 비록 독자가 없을지라도
읽는 이를 행복학 해줄 수 있느냐 하는 것인데,
내가 읽은 만화책은 꼭, 예쁘고 좋은 얘기만이 아닌, 끔찍하고 비참하고
인간모멸적인 작품들도 많았음에도 불고하고 나를 들뜨고 긴장하고 행복하게 하였는데,
나 역시, 남들이 듣고 싶어하는 얘기가 아닌 내 솔직한 시선으로 얘기한 것이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것일까,
에 대해 의문이다.
아무튼, 그리고 적어도
만화가 만큼의 노력은 하고 또, 그들의 작품 정도 되는 무언가를 쓰고 싶기는 한데 또,
모든 것이 <스테이>처럼 끝나 버릴까 우려도 되고, 한편
그렇게 <스테이>처럼 시작하게 되기를 바라기도 한다.
일본의 한 요리만화는 '김치' 소재의 한 회를 연재하기 위해서 한국까지 취재기자를 보내기도
하고,
역사 교과서를 비웃는 빼어난 고급지식을 자랑하기도 한다.
(마스터 키튼에서 키튼은 고고학자인데 딸의 학교에 가서 역사 선생에게 인류 문명의 발생지는 네 곳이 아니라 최소 20곳이 넘는다고 정정을 요구한다.)
어떤 면에서 세상은 오히려 만화같은 면이 많은데, 여기서 말하는 만화같은 면이란,
허술하고 대충대충이고 그냥 넘어가려하고 단지 그냥 그렇게 하는 식으로 하는
소위, 별 것 아닌 나부랭이, 같은 것을 말한다.
그것은 역시, 윤동주 시인을 민족 저항시인이라고 가르치는 국어교과서와 시험 문제와
그리고 대학에 가서 그렇지 않다고 다시 배우게 되는 '나부랭이' 교육 시스템에서도 찾을 수 있고,
또, 종교나
가족관계,
우정,
사랑,
이런 것에서도 찾을 수 있다.
그래서 때때로 나는 만화가 좋은데, 어쩌면 코믹해서 좋은 게 아니라, 우울하고 슬퍼서
그런 지도 모르겠다.
살아가면서 나도 점점 내가 살고 있는 이 세계가 좋아지고 마음에 들고 있는데 그것은
알면 알 수록 우울하고 슬픈 곳이어서 마치
고향 같기 때문이다.
중고등학교 시절의 내 고향.
쥐가 돌아다니던 만화가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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