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 잘 봐주세요.
여기에 사진들이 있습니다.
제가 프랑스에 다녀왔을 때의 사진입니다.
그런데 저는 카메라를 가져가지 않았습니다.
저는 카메라 없이 여행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거든요.
그건, 확실히 힘든 일이었어요.
찍고 싶은 게 너무 많았거든요.
그래서 저는 너무 많은 것들을 참아야 했습니다.
그래도 여기 몇 장의 사진을 가져왔습니다.
이것은 카메라 없이 찍어온 사진입니다.
1. 파리 외곽에 이름을 잊어버린 어느 메트로 근처 서민 아파트 안에 있는 공원 사진입니다. 저는 이 공원에서 세 시간 동안 혼자 앉아서 비둘기 한 마리와 놀이터를 스케치했고, 축구하는 아이들을 구경했고, 한 쌍의 연인을 보았고, 어깨 동무하고 밥 먹으러 가는 아버지와 아들의 모습을 해가 지도록 지켜보았습니다. 그 사진입니다.
2. 센 강, 새벽 3시 55분 사진입니다. 해가 뜰 때까지 센 강을 보자는 생각으로 앉아 있다가 깜빡 졸았고, 30분 정도 뒤에 일어나자 제 가방이 없어졌습니다. 황당해서 마구 웃으며, 노란 조명과 품위 있는 건물들 사이를 뛰어다니는 제 모습이 찍혔습니다.
3. 이것은 공항에서 파리 시내까지 메트로를 타고 가다가, 대체 어디서 내려야 할지를 몰라서, 지금 어디를 지나고 있느냐고, 옆자리 흑인에게 물었더니, 그가 어디를 지나고 있는지는 가르쳐 주지 않고, 어디로 가길 원하냐고 물어서, 목적지가 없던 나는 당황해서 "온니 파리"라고 말하자, 통로 건너 편에 있던 한 마담이 소리 나게 웃어서 얼굴이 빨개진 저와, 황당하다는 표정의 흑인 청년이 찍힌 사진입니다.
4. 한 프랑스인의 집에 초대받아서 갔을 때의 사진입니다. 그는 게이였는데 섹스를 요구해서 "I'm not gay!"라고 말하자 그가 삐져서, 리모콘도 뺏어가고, 주겠다던 술도 안주고, 그 후로 말한마디도 안하고, 그래서 나도 '치사한 자식'이라고 속으로 중얼거리며 화가 났을 때의 사진입니다.
5. 루브르 박물관에서 루브르 박물관을 어떻게 발음하는지를 묻자, 친절하게 가르쳐 주던 어느 매드모아젤의 웃음 짓는 사진입니다.
6. 개선문 앞 공원에서 배고픔을 참고 있는데, 바게뜨 샌드위치를 맛있게 먹고 있는 동양인이 있어서, 말을 걸었더니 한국인 유학생이어서 샌드위치를 하나 얻어먹으며 기뻐하는 표정의 사진입니다.
7. 노숙하던 사진입니다.
8. 짐을 잃어버려서 도움을 청하러 갔던 대사관을 나올 때, 대사관 직원에게 한 대 얻어 피우던 담배를 물고 비 맞으며 걷는 사진입니다.
9. 파리 라생 지역의 경찰서에서 오전 8시가 되어야 업무가 시작된다는 말을 듣고, 아침까지 기다리던 사진입니다. 짐은 몽땅 도둑 맞았지만 사실 지갑은 안잃어버렸는데, 불쌍해 보이려고 돈을 많이 도둑맞았다, 500유로나 된다,고 거짓 진술을 하던 순간입니다.
10. 몽마르뜨 언덕에서, 세네갈에서 온 흑인 친구를 한 명 만나서, 그가 나에게 실로 팔찌를 만들어주고, 꿀루꿀루라고 어떠냐고 해서, 트레비앙! 그랬더니 돈 내놓으라고 해서, 10유로 달라는 것을 2유로로 깍아서 그를 실망시키던 때의 사진입니다. 그는 나중에 자기 친구들을 소개시켜 주고, 이영표와 박지성 얘기를 하더니, "안녕하세요"라는 한국말을 하고, 말보로 레드 담배 한 개피를 건네 주었습니다. 뒤에 보이는 한 무리의 여행객들은 한국사람들로, 그 중 한 아저씨에게 담배 한 대만 달라고 했더니, 한 갑을 통째로 주고 가셔서 고마웠습니다.
이상입니다. 모두 열 장의 사진을 올립니다.
흠. 사진을 잘 찍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잘 보이기는 하죠?
혹시, 사진이 잘 뜨지
않을 경우, 마음 속 윈도우 XP 프로그램을 새로 설치하세요.
값은 무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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