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주 기가막히게 재밌는 책을 마침내 읽게 되었다. 여러모로 감탄과 찬탄을 금할 수 없으며 치밀한 두뇌가 부럽고 유머가 탐나며 센스가 무섭다고 생각하였다. 그 책의 이름은 <나는 웃는다 고로 존재한다>는 철학도서인데, 꼼꼼히 읽지 않는다면 그냥 '웃기는 에세이'로 지나치고 말, 그런 책이다. 하지만 읽으면 읽을 수록 거듭 반복 읽을 수록 숨은 뜻이 겨우 겨우 다가오는 '깊고 웃긴' 책이다. 근데 오늘 바빠서 거의 읽지 못했다. 그러자
그러자 세상은 하얗게 변했다
하염없이 인터넷 세상이 부러울 때가 있는데, 인터넷 속의 '하양'은 때를 타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백인이 아닐 뿐더러, 아무리 씻고 말려도 몇 시간이면 때와 먼지가 붓는다. 오늘도 집에 들어가자마자 옷부터 갈아입고 샤워를 했는데 그러자
그러자 세상은 하얗게 변했다
나는 예전부터 남들이 느끼고 하는, 생각의 방식이 참으로 궁금했다.
나는 생각할 때, 먼저( .....) 이런 느낌이었다가 (......) 이렇게 되고.(.....) 요 부분이 요렇고(....)해서(....)하는 식으로 생각이 진행된다. 이건 정말 설명이 불가능하다. 그러자
그러자 세상은 하얗게 변했다
남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궁금하지만, 어떤 식으로 생각해나가는지가 더 궁금할 때가 많다.
그러자 세상은 하얗게 변했다
이런 식으로 계속 암시를 스스로에게 주면 왠지 내가 좀 더 하얘지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흰 우유를 마시고 흰 크림을 떠먹으며 흰 스크린을 보고 있다면 좀 더 그런 기분이 강하게 든다.
엄밀히 말해서 흰색과 검은 색은 없다고 하는 글을 본적이 있다. 흰색은 회색의 가장 밝은 부분이고 검은색은 회색의 가장 어두운 부분이라고 하는.
회색에서는 가끔 우웅! 하는 소리가 심하게 크게 들리고는 한다. 반면 흰색은 아주 조용할 때가 많다. 그런데 또 어떤 때는 회색이 촉촉해서 조용하고 흰색이 쑤근쑤근 어수선할 때도 있다.
결국은 내가 느끼기에 따라 그냥 다를 뿐이다. 그래서
"좋아하는 색이 뭐야?"라고 물으면 나는 어렵다.
그때마다 좋아하는 색이 다르기 때문이다. 만약, 빨강이 좋아, 라고 말하면 10분도 안되서 빨강보다 더 좋은 색이 생긴다. 때로는 "빨강이"라고 말할 때 이미 빨강 보다 파랑이 더 좋아지기도 한다. 그러니까 "빨강이 좋아."라고 까지 말할 때가 되어서는 마음 속에서 <빨강에서 파랑, 파랑에서 노랑>으로 좋아하는 순위가 바뀌어 있기도 한다.
"빨강이 좋아."라고 대답하는 순간에 이미 그 색이 예전에 좋아했던 색이 되어버리고는 한다.
그래서 나는 그 후로, 어떤 식으로든 빨강색을 좋아하기 위해서 노력할 때가 있다.
왜냐하면, 이 사람은 이후로 나를 "빨강색을 좋아하는 남자"로 기억할 테고, 나를 바라볼 때 내가 당연히 빨강색을 여전히 좋아하고 있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내가 여전히 남자로 유지되고 있는 것은 주변에서 나를 남자로 기억하고 기대하기 때문에 이뤄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나를 남자로 기대하지 않는다면 나는 남자가 아니게 되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빨강색이 좋은 이유를 스스로에게 뿌리고 납득하려고 노력하는데, 이렇게 노력하면 노력할 수록, 마치 공부할수록 수학이 싫어지는 것처럼, 빨강색이 싫어져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평생 나 스스로에게는 무슨 색이 좋은지 물어보는 적이 없다.
근데.
오늘은 무척 "하얗게색"이 좋다.
이 색은 <하얀색>이 아니라, <하얗게색>이다.
이 색을 칠하면 하얀색이 칠해지는 게 아니라 하얗게색이 칠해진다.
하얗게 색을 설명하자면 이렇다.
"끼우뜨삐스스스미오자느느는고교오ㅑ야흐이이힙힙쏘움" 하는 느낌이랄까.
예전에도 "하얗게색"이 좋았던 적은 있지만 이렇게까지 "하얗게색"이 좋았던 적은 없는 것 같다. 그러자
그러자 나와 세상은 전부 하얗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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