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역에서
- 금기웅
안내 방송하는 기관사처럼 일일이 행선지를 멘트하며
승객들 호기심어린 시선 받은 채 전동차 출입문에 기대선
머리 헝클어진 조그만 남자아이
낡은 바지 맨 발, 흰 슬리퍼를 신은
"내리실 곳은 안국역, 안국역입니다. 쉭쉭...쉭쉭..." 차문 열리는 소리까지 앙다문 이빨사이로 내뱉으며,
출발역부터 그렇게 중얼거리며 서있었다. 언제까지 그 자세로 갈 것인가
역에서 내려 계단 오르다 말고
가판대 옆 의자에 주저앉아
아픈 사내아이를 업은 어머니처럼 달려가는 전동차를 바라본다
차량은 내 흐린 시야 때문인지 기다란 몸체 뚝뚝 잘려나가고 있다
중풍 든 노인
온 몸으로 역 바닥에 꾹꾹 도장을 찍으며
옆자리에 힘없이 다가와 묻는다
손님, 이거 얼매짜리지요?
(그의 손바닥 위에는 10원 짜리 동전 하나가 오들오들 떨고 있고)
나는 아무런 대답을 할 수 없었다
허연 머리통들이 무수히 공중을 둥둥 떠다니는 그곳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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