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마을 시편 73

- 희망찾기

 

                                                정가일

 

구멍 속에서

어머니는 하루에도 알약을 한 움큼씩 삼킨다

알사탕을 먹듯이 오물오물 오물거린다

 

나는 그것이 무서워서

마지막 희망처럼 사람의 양 볼따귀를 볼록하게 하는 그것이

무서워서

 

너를 갉아먹고

나를 갉아먹고

지구의 한 귀퉁이를 갉아먹는 그것이

무서워서

 

나도 한번 나뭇잎 갉아먹는 민달팽이가 되어

솜털 보송한 꽃잎에 숨었다가

이빨자국 선명한 구멍 속에서 희망이란 놈을 찾기로 했다

 

하늘에 바람 일고

벌건 대낮에도 천둥번개가 울었다

마른번개처럼 그렇게 말라가던 나는

 

예전에 꽃이 나에게 물었던 것처럼

예전에 꽃이 나의 옷자락을 슬쩍 잡아끌었던 것처럼

꽃에게 물었다

내가 찾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길 건너 어디쯤에 있느냐고

 

도시 속의 작은 텃밭 대추나무 위에선

큰 목소리로 매미 떼들이 울고

소리 내어 한 번 울어보지 못한 나는

사람의 발에 으깨지면서 희망 찾기를 했다

 

꽃은 피었다간 지고 또 다시 꽃은 필 것이고

오늘도 어머니는 한 움큼의 알약을 삼키고

민달패이가 된 나는

토악질을 하면서도 지구의 한 귀퉁이를 갉아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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