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수업 시간이었는지 재작년 수업시간이었는지

 

'김기우'라는 고구마스럽고 따듯하고 인간적이고 냉정하며 아부 잘 못하며 술 좋아하고 여기저기서 손해보는 것 같은 밥 잘 사주던 어느 소설가의 수업을 들을 때였다.

 

과연 '사랑'이란 무엇일까. 하는 것에 대해 난장토론을 시작했다.

 

시시한 것들은 다 잊어버렸고, 그때,

 

"껌이요" 라고 말했던 나는 사실은 뭐라고 갖다붙여도 다 설명되는 것이 사랑이오,

 

뭐를 같다 붙여도 설명되지 않는 게 사랑이라, 그래서 그냥 "껌이다" 그랬던 것이었는데,

 

그렇게 설명하니 복잡할 것 같아서 이렇게 그 이유를 풀어냈다.

 

"씹다보면 지겹잖아요, 잠깐은 깨끗해지는 기분이지만 결국은 오염되죠."라고 얘기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나도 기억 못할 대답을 했다.

 

그러던 중, 적어도 통찰력에 있어서는 "껌"처럼 별거 아니게 보던 한 친구가 있었는데,

 

몹시 그럴듯한 대답을 해서, 몇 년 째 그 기억을 잊지 못하고 있다.

 

그 친구의 답은.

 

"사랑은 담배죠. 왜냐구요? 못 끊으니까요."

 

당시 이 친구는 나와 동갑이었고, 나와 동기였으며, 동기 여자 20명 중 5명에게 접근했으나 성공하지 못한, 학교 생활 중 대략 20명 가량에게 접근(?)한 무성한 소문의 친구였으며 꼴초였다.

 

음. 역시 통찰력은 경험에서 나오는구나.

 

라고 지금까지 생각한다.

 

얼마전 신문기사를 읽다가 봤는데, 쓸데 없는 것 규명하기 좋아하는 일군의 과학자들이

 

'사랑'에 중독성분이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는 내용이었다.

 

사람이 '사랑' 감정에 빠졌을 때 발생하는 물질이 중독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과연 사람이 사랑 없이는 못산다는 것은,

 

애연가가 담배 없이 못살고, 애주가가 술 없이 못사는 것처럼,

 

뇌와 물질에게 조종당하는 거구나, 라는 1차 정보를 접수하고 다시 한 번

 

그 친구를 떠올렸다.

 

이 친구가 과학자였구나.

 

혹시 모른다. 더 열심히 연구가 진행된다면, '사랑' 할 때 뇌속에서 자일리톨 성분이 검출될런지도.

 

그 순간을 이 친구는 잊었는지 모르지만, 나로서는 잊을 수 없는 것이, 일종의 패배감을 느꼈기 때문인 듯 하다.

 

젠장, 아직까지도 그렇게 명쾌하게 '사랑'을 조롱하는 말을 생각해낼 수가 없다.

 

그 녀석의 그 대답이후 나 또한 insite를 키우기 위해서 담배를 자주 피우려고 노력했는데,

 

한 번은 또 어떤 친구에게 담배 피는 모습을 목격당했다.

 

그 친구는 내가 담배를 안피우는 줄 알고 있었고, 나 또한 내가 담배를 안 피우는 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대화가 오갔다.

 

"야! 너 언제부터 담배를 폈냐!"

"담배라니? 편지쓰는 거야. 하늘에다가."

 

그때, 이 친구는 이 엉겹결의 내 변명이 무척 마음에 들었는지 그 후로 나를 볼 때마다

"요새도 편지 많이 쓰냐? 편지 한 통 쓰러 가자."

 

이렇게 말을 하고는 했다.

 

담배를 많이 태우지는 않으나 그럭저럭 횟수로 3년을 채워가는 지금.

 

확실히 담배는 사랑과 닮은 면이 많아서 끌 때 제대로 꺼야지 안그러면 산불난다.

 

끄고 나서도 몸에 냄새가 남고, 금단 증세에다가, 몸에도 해롭고, 술이나 커피와 잘 곁들여진다.

 

일단... 담배를 한 대 피고 와야겠다.

 

 

 

PS. 담배를 피우면서 생각해봤는데, 사실 그 친구는 그렇게 열심히 여자를 만났으면서도 사실 그리 인기는 없었고, 성공확률도 낮은 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보통의 여자들이 '담배'를 싫어하는데, 이 친구의 insight에 따르면 [우리 사랑하자=우리 담배피자]인 셈이니까 인기가 낮을 만도 하다.

 

그러니까, 결국 이 친구이 insight는 그리 연애현실 속에서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닌 듯 하다. 그런데 한 편, 가끔 담배를 피우는 나도 담배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다만, [어떤 때] 무척 담배가 좋은 것이다.

 

그런 견해에서 본다면, 사랑 또한 사실은 그리 좋아할 만한 것은 아닐 지 모른다. 하지만 도저히 견디기 힘든 [어떤 때] 사랑은 필요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

 

어쨌거나 사랑과 담배의 연결고리는 이 친구의 것이고,

 

사실 그보다 몇 십년 이전에, 황순원소설가께서 쓰신 시 중에

 

'그녀가 보고싶을 때마다 담배를 피웠더니/담배만 물면 그녀가 생각나네'와 비슷한 구절이 있었다.

 

그보다 더 이전에 어떤 외국 시인이 담배와 시를 연결해서 뭔가 써냈을 확률은 또한 매우 높다.

 

그러므로, 사랑에 대한 비유를 하고 싶다면,

 

이전 시대 사람들은 경험해 보지 못한 대상에 붙여서 해야만,

 

original 내 것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자일리톨

                         - melt

 

사랑은 자일리톨 껌이다.

서로 자신이 '진짜' 자일리톨 껌임을 주장하지만

정작 '자일리톨 성분'은 오로지 사랑하기 어렵다

우리는 그것을 껌딱지에 주사해서 복용한다.

사실은 껌을 씹으면서

자일리톨을 씹는다고 착각한다

 

아유, 이

충치에 도움되지 않는 사랑같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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