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걸 뭐라고 부르는 지도 모른다.

더불어 쓸 줄 도 모르고 읽을 줄도 모른다.

제례백과(?) 그 비슷한 책을 펴놓고 종이를 덧씌우고 배끼기를 조카에게 시켰다.

 

그러니까 이건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처음 맞는 명절, 차례상에 붙은 어머니 명찰 같은 거다.

 

인쇄된 글씨를 배꼈을 뿐인데도

손으로 쓴 글씨에는 목소리가 느껴진다.

 

글의 쓰임이나 용도와 상관없이

달리 말해, 글을 모르거나 그 용도와 쓰임을 모르더라도

손으로 쓴 글씨를 보면 들을 수 있는 목소리가 있다.

 

이 글씨를 보면

옷장에서 막 새옷을 꺼내 입고 시골집에 명절 새러 온 한 젊은이의

쑥스럽고 어색하고 자랑스럽고 분하고 파란 하늘 같은 태도가 느껴진다.

 

물론 그것이 나는 아니다.

 

그것은 아마 가끔씩

내가 나이고 싶은 나일지도 모르고

어디선가 담 너머 구경한 그런 모습일 지도 모른다.

나는 키가 크니까 담 너머로 그런 것들을 잘 본다.

 

원래, 태웠어야 하는 것인데

태우지 않고 숨겨두었다.

 

종이는 늘 미라 같은 면이 있으니까

창백하고 때가 타고 냄새가 나고 가끔씩

보고 있기만 해도 상처를 받게 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초등학교 6학년 때 내가 좋아하던 김현주라는 여자아이가

졸업을 앞두고 마지막 크리스마스를 맞아 정성들여

누군가에게 갈(내게는 오지 않을) 카드글을 적고 있는 것을 보았을 때

그 종이가 나를 베었다.

 

어디를 베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때는 살이 많았으니까.

살이 빠지고 나면 그 흉터가 보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여기 저기 흉터가 많아서 그때 그 흉이 어느 것인지를 모르겠다.

 

흉진다고 연고를 들고 쫓아나오던 외할머니.(얼마 못가 죽음)

연고 바르는게 더 쓰리다고 도망나가던 새끼사자.(나의 전생, 얼마 못가 죽음, 고 1때 쯤)

우르르 뭉쳐서 함께 도망가주던 까마귀같던 동네 친구들.(얼마 못가 다 사라짐)

해 저물녁 동네 구멍가게 평상에서 슬리퍼 신은 종아리가, 바닥에도 닿지가 않아,

까딱 까딱 거리며 기다리던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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