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가 그린 벽화 속의 풍경들 2
시기섭
겨울밤 할머니는 다라 가득한 도라지들을 과도로 찬찬히 깎고 있다
뜨거운 물에 한참 불린 도라지들 껍질을 벗겨내자 하얗게 씻긴 낙태아들의 손가락 같은,
도라지들이 스케치북 속 우리 엄마 젖가슴을 따스하게 적시며 쌓이고 있다
엄마아, 엄마아아
내 곁에 누워 있는 기저귀 찬 할아버지, 먼 나라로 입양을 와 첫날밤 맞은 아기처럼 울고 불며 엄마를 찾느라 자꾸만 허공을 헛잡으며 징징대고 있다
팩베지밀에 빨대를 꽂아 몇 모금 먹여주고 나는 다시 돌아누웠다 이내 잠잠해졌다
봄이 오면 엄마가 온대요, 봄이 오면 엄마가 온대요,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달래며 미친 듯이 웃음을 터뜨렸다
눈은 푹푹 쏟아지고, 어디선가 대빗자루에 눈 쓸리는 소리 서서히 밀려오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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