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여름까지 학교 신문사에 원고를 썼었다.

꼭지 이름이 '시가 있는 하루'.

 

시 한 편을 소개하고 그와 관련된 간단한 수필이나 서평을 곁들여 보내면 되었다.

 

 

올 봄부터 다시 해달라기에 다시 하기로 했다.

 

 

 

다음은 그 원고다.

 

 

 

 

안과에서 만난 친구

                                           김 종

 

안과에서 친구를 만났다

안대를 한 그가 한쪽 눈으로 나의 두 눈을 바라보았다

서로가 세월이 흐른 만큼 눈이 닳아 있었다

 

시골 논둑길에서 풀벌레들의 날개 빛과

명주실 같은 울음소리 맑게 비치던 눈은

온데간데 없다

 

볼 것 못볼 것 다 보아버린

용량을 초과한 눈과 눈의 만남

 

그의 왼쪽 눈은 백내장이고

내 오른쪽 눈은 벌레가 날아다닌다

삶의 경고장 같은 아픔들을 지닌 채

이런 막다른 골목의 안과에서 만나다니

 

이제 우리는 술잔도 마음대로 기울일 수 없다

꿈도 희망도 멀어져버린 지금

눈과 눈의 만남도

한없이 쓸쓸하다

 

 

, 마음 설레는 계절이고, 신입생과 복학생들, 집에서 눈치 보던 반 백수들이 살맛 난다고 시시덕거릴 새 학기에 한없이 쓸쓸하다고 끝나는 시를 소개하게 되어 미안하오.

그러나 빛이 강하면 그늘도 깊어진다고, 어쩌면 봄이 주는 기쁨이란 밝아서 더 잘 보이게 되는 티끌들 때문인지도 모르겠소. 마찬가지로, 즐거워죽겠다고 떠드는 당신들에게도 짙은 밤 술집에서 쏟아버리고도 남아 찰랑거릴 나름의 stress가 있을 것이오.

대학친구는 고등학교 친구와는 다르다고들 하오, 직장 동료도 대학친구와는 다르다고 하오, 누구나 몇 십 번의 봄을 지내고 나면, 어린 시절 친구와 풀벌레들의 날개 빛과/명주실 같은 울음소리 맑게 비치던 눈이 그리워지는가 보오.

근데, 실제로 나는 그런 눈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소. 내가 어렸을 적 우리 동네 친구들은 풀벌레의 날개 빛이나 울음소리에 눈 반짝거리는 법이 없었소. 잠자리 날개를 잡아 뜯거나 꼬리에 실 매달아 지쳐 죽게 만들고 평평한 돌 위에 올려놓고 돌멩이로 빻아가며 놀았소.

행여, 눈이 반짝거렸다면 그것은, 간만에 받은 용돈이나 텔레비전 연예인이나 케이크와 떡볶이가 눈에 비쳐서 그랬을 것이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를 읽다 보니, 나에게도, 내 동생이나 친구들에게도, ‘풀벌레들의 날개 빛과/명주실 같은 울음소리 맑게 비치던 눈이 있었던 것만 같아 기분이 어색하고 쑥스럽고 좋소. 어린 시절의 나쁜 짓들이 후회가 되오.

어린 시절이 후회가 되는 것처럼, 지금을 다시 후회하지는 말라고, 꽃도 피고 바람도 불고 구름도 하얘지고 병원에도 가는 것이오. 혹은,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처럼 지금을 그리워하라고 온도계는 키가 자라고 잔디밭에는 비가 오는 것이오. 아니면 말라고 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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