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박 26시간을 일하고 아침에 집에 들어가는 길에

아, 그래서 그랬던 거군

하고 이해가 갔다

 

예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선배 하나가 광고회사에 스카웃되어 갔는데

1년 동안 몇 번이나 지하철 안에서 쓰러졌다고 했는데

대체 왜...

하고 생각했던 것이 이해가 간 것이다

 

그건, 졸려서 그런 거였군

서서 지하철을 타고 가는 동안 내내 나도 모르게 잠이 들며 무릎이 툭 꺽어지며

몇 번이고 뒤로 쓰러질 뻔 했던 거다

 

그렇게 잠이 들고 나서

문득 알았는데, 사무실에 난을 물에 담가두고서 그냥 퇴근했던 거다

목요일은 난에 물을 주는 날인데 아침에 물에 담가두고서

그냥 퇴근했는데 이 상태로 내일 아침에 회사에 가게 된다면

장장 24시간을 물에 빠진 상태가 되는 것이다

 

어쩌면 괜찮을 지도 모르지만, 일주일에 2시간, 이라고 했던 전문가의 말도 있고

무언가를 내가 물에 빠뜨려 죽이는 것만 같아,

아니 그보다는

무언가가 물에 빠져 죽어 가는데 그 사실을 지구상에 오직 나만 알고 있는 것 같아

이빨도 닦지 않고 머리도 감지 않고 고추를 만지던 손도 씻지 않고

18시 30분에 다시 회사로 나왔다

 

회사로 오는 길에

내 발이 왜 이리 더딘지

지하철은 왜 이리 굼뱅이 속돈지

인생은 타인에겐 철저히 무관심한지

 

 

 

 

'some'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비 오는 날  (0) 2006.04.04
공정한 시선  (0) 2006.03.30
어느날  (0) 2006.03.29
표창  (0) 2006.03.29
12만 7천원의 쓰임  (0) 2006.03.27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