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정신없이 바쁜 날 중에 하루였는데
그런 와중에 전화가 왔다
학교 학보사에 보내주기로 한 원고가 오늘이 마감이라고
음
이번 원고 컨셉은 정해놨는데
정작 시를 못고르고 글은 한 자도 쓰지 않은 상태
밤 11시 반까지 선배님들이 쓴 카피정리를 하고
컨셉에 맞지도 않는 시를 골라서 - 있으니까 옆에
대충 아귀를 맞춰 오무렸다
아이고~
별들을 읽다
별들을 읽듯이 그녀를 읽었네
가만가만 점자(點字)를 읽듯이
그녀를 읽었네
그녀의 달걀빛 목덜미며
느린 허리께며
내 손길이 가 닿는 언저리마다
아흐, 소름이 돋듯 별들이 돋아
아흐, 소스라치며 반짝거렸네
별들을 읽듯이 그녀를 읽었네
하얀 살갗 위에 소름처럼 돋는 별들을
점자(點字)를
읽어내리듯이
내 손길이 오래 읽어내렸네
그 희미하게 반짝거리는 낱말들의 뜻을
눈치 못 채서 참 슬픈
내 손길이 그녀를 오래 읽어내렸네
그녀를 읽듯이 별들을 읽었네
그녀를 읽듯이 별들을 읽었네
춘천 가는 길 백봉산 마루께에 돋는 별들을
점자(點字)를 읽듯이
희미한 연필선으로 반짝거리는 그녀의,
낱말들의 뜻조차 알지 못하면서
서운하게 서운하게
소심함의 힘으로 시를 쓰다
저 사람은 대체 왜 시를 쓰는 걸까, 라고 물론
아무도 생각해보지 않았겠지만, 그래도 혹시 궁금하다면 이런 해석은 어떨까?
소심해서
시를 쓴다고.
세상에는 “좋아한다”는 말을 쉽게 할 수 있는 사람과 쉽게 못하는 사람이 있다.
“사랑한다”는 말을 쉽게 할 수 있는 사람과 쉽게 못하는 사람이 있다.
물론, 요즘 세상은 비교적 편하고 자연스럽게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을 선호한다. 아이를 키우는 데에 있어서도 부모의 적당한 애정표현은 매우 중요하다고 한다.
그런데 세상에는 여전히, 이 말을 하기가 그렇게 버거운 사람들이 있다. 내성적이고 말 한 마디가 쑥스러운 사람들. 런닝셔츠가 축축해지도록
진땀을 흘리면서 고백 한 번 못하는 사람들. 시를 쓰는 사람들 중 일부는 이런 사람들이
아닐까?
나는 시인의 이미지를 생각할 때, 이런 모습의 사람을
떠올리고는 한다.
말은 잘 못하고, 무척 소심한데, 애정은 넘쳐서, 이 애정을 “좋아한다”는 말로 하려면,
만 번 정도는 해야만 할 것 같아서, 차마 그렇게는 못하겠기에, 남들 만 번 “좋아한다”고 하는 애정의 크기를 ‘한 줄’에 담아서, 초대용량(超大用量) 감정을 압축파일로 전송하고 싶어서! 그래서 시를 쓰는 사람.
‘별들을
읽듯이 그녀를 읽었네’
‘점자(點字)를 읽어내리듯이/내 손길이 오래 읽어내렸네’
혼잣말은 잘해도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는 입술이 발발발발 떨리는 소심한 사람인데, 그런 자신의 모습이 너무 부끄럽고, 그런 자신의 모습이 너무 화가
나서, “사랑한다”는 뻔한 표현 대신에 이 지구에서 나만이
할 수 있는 말로 ‘사랑’을 전해주고 싶어서, 죽죽 종이를 찢으며, 징징 울면서 시를 쓰는 사람.
‘희미한
연필선으로 반짝거리는 그녀의,
낱말들의 뜻조차 알지 못하면서
서운하게 서운하게’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다는데, 시를 읽으면서 이 사람은 왜 이 시를 썼을까,
생각해보는 것도 꽤나 재미가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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