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비교적 내 나이 또래의

서울대학을 나온 카피라이터 선배와

시카고의 무슨 대학을 나온 디자이너 선배와 얘기하다가

 

 

청바지 한 벌이면 원하는 장소(예를 들면 압구정동이나 명동)에서 따귀를 맞아주겠다,

고 혹시 남자의 따귀를 때리고 싶은 친구분들이 주변에 있으면 제게 알려달라고 했다.

 

 

대학 시절에는 하겐다즈 초코렛 하나와 담배 한갑을 받고

한 여자 후배에게 시내에서 따귀를 6대나 맞았다고도 얘기해주었다.

 

 

그러자, 그런 걸 대체 누가 하고 싶어하겠냐고 선배들이 말했고 나는

그래, 적어도 내게는 그런 성숙한 생각을 하는 후배가 있었다고 얘기해주었다.

 

 

그러자, 그것이 대체 어떻게 성숙한 생각이냐고 선배들은 물어봤고,

TV 등에서 그토록 자주 보여주는

남자의 따귀를 때리는 장면들이

대체 어떤 기분이며, 어떤 것을 표현하기 위해서 그렇게 뻔질나게 TV드라마에서

보여주는 지 궁금하여

직접 실행해보는 성숙한 생각의 후배였다, 고 대답해주었다.

 

그리하여 다음에는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를 얻어먹는 댓가로

후배는 내 얼굴에 물을 뿌리기로 했었는데(식사 후 레스토랑에서)

물을 뿌리는 것이 좋을 지, 머리 위에서 조르륵 붓는 것이 좋을지에 대한 판단과

무엇보다도

연기에 대한 준비면에서 시간을 허비하다 대충 시들해지고 말았다.

 

거리에서 뺨을 맞는 situation이란, 단지 누가 누구의 뺨을 때리다,의 행위사실이 중요한 게 아니라, 감정과 감정의 대립, 그로 인한 몰입, 그로 인한 때리는 행위, 그리고 거리의 관객들...

 

이런 요소들이 충족되어야 비로서 어떤 체감, 상상과 현실의 비교가 이뤄지기 때문에

생각보다 쉽지 않다.

 

후배는 내 뺨을 때리기 전에 무척 어색해했고

나도 미리 맞을 걸 알고 있기 때문에 움찔거렸고

서로 자꾸 웃음이 나왔고

그 때문에 다시 하고, 다시 하느라고 여섯 대나 맞게 된 것이었다.

 

반복연습을 통해 우리는 약간의 연기와 몰입 속에서

일종의 가상 스토리까지 만들었는데

그것은 이렇다.

 

일단 서로 빤히 마주본다.

갑자기 여자가 남자의 뺨을 세게 때린다.

짝! 소리가 난다.

남자의 얼굴이 훽! 돌아간다.

주변 사람들 깜짝, 놀라 멈춰서고 힐끗 쳐다본다.

그때 잠시 정적.

그리고 여자와 남자가 동시에 하늘을 쳐다보며 마구 웃는다.

 

일단, 동네 편의점에서 하겐다즈를 먹고

담배를 챙겨 주머니에 넣은 다음 몇 번 연습을 하고

시내로 나가서

했다.

 

 

우리는 나름대로 진지했고, 몸값이 오른 나는 이제

리바이스 청바지 한 벌 정도는 받아야 그 역할을 해주려고 한다,고

선배들에게 말을 한 것이었는데,

선배들은 의뢰인을 찾아주기는 커녕, 누가 그러겠냐고, 이해 못하겠다고 그래서

 

그게 왜, 이해 못할 것인지 약간 분해서

나중에 성공해서 책을 써내면

이 에피소드를 집어 넣고서

대한민국 10%가 되려는 마음가짐과 지구 1%가 되려는 마음가짐의 차이를 설명해주면서

 

만약, 누가 당신에게 이와 똑같은 얘기를 해준다면

나는 당신이, 뭐야 별 것도 아닌데, 하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여주길 바란다.

이건 그냥 별 거 아닌 거잖아.

우리는 뭐든지 할 수 있다고.

 

라고 써야지.

 

&

 

내가 사실 7년 쯤 전부터

해보려고 해보려고 해도 아직 못하고 있는 행동이 하나 있는데

나는 언젠가, 반드시, 이것을 하고 말겠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내가 반드시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결심한 것과 마찬가지로,

옳은 것일 수도 있고 틀린 것일 수도 있는 그런 것이지만

일종의 신념(즉, 자신에게 정당하고 옳은 것)으로 삼는 그런 것이다.

 

가면을 쓰고 사회생활을 하는 것.

 

V for vendetta 와 같은 가면일 수도 있고,

일본의 여우가면 같은 것일 수도 있다.

 

이것을 실행하려면 우선 하루 종일 쓰고 있어도 불편하지 않은 기술력과

몇 년을 쓰더라도 물리지 않을 디자인이 뒷받침되는 가면이 있어야 한다.

 

누가 좀 만들어 주었으면...

 

그리고, 주변을 신경 쓰지 않도록, 자신의 신념에 대한 완전한 몰입,

이것도 아직 자신이 없다. 적어도 몇 년은 혹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이에 대해 집중 해서 몇 개월은 해야 가능 할 것 같다.

 

당신이 학교에 갔을 때, 당신이 직장에 출근 했을 때

누군가가 가면을 쓴 채 생활하고 있고

그 짓을 10년을 한다고 생각해 보면

그건 그저 자연스러운 모습일 수 있다.

 

생각해 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만약 당신이 정말 마음 편한 사람 외에는 언제나 가면을 쓰고 대할 수 있다면

당신의 피로는 절반 이하로 줄어들 것이다.

 

사회적 약속에 의한 연기 중 가장 피로한 부분 중 하나를

자신의 삶 속에서 덜어낼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웃고 싶지 않은 사람을 보고 웃지 않아도 되는 것이며

슬프지 않은 얘기를 듣고 슬픈척 하지 않아도 된다.

 

생각만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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