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길이다, 하며 의미가 담긴 길 얘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늘상 걷게 되는 길들

동네에 있는 길부터 시내 중심부의 길들

광화문로라든지 충무로라든지 그런 길들

제법 많이 걸어다닌 길들 중

여기 정말 좋다, 최고다, 하는 길이 떠오르지 않는다.

 

대체 너는 어떤 길을 좋아하길래

이 모든 길들이 다 마음에 들지 않는 건가?

라고 묻고 답을 생각하다가

마침 인적 없는 으스스한 산길이 너무 흡족해서

 

혼자 걷는 길

이라고 대답을 생각했다.

 

그러고보니, 내가 사는 곳

어느 길이나 혼자 걸어볼 기회는 거의 없는 것이

도로에는 새벽부터 밤까지 항상 차가 달리고

인도에는 항상 누군가 걷고 있으며

이 길들의 용도 자체가

다수의 효율적인 통행이기 때문이다.

 

지난 주말에는 차도가 뚝 끊기고

등산로조차 없이 우거진 숲 속 애기 울음소리만큼 가냘픈 오솔길을

저녁 8시부터 걸어들어갔는데 환청이 들리고 곰이나 뱀이 나올 것 같을 즈음

무서워서 돌아내려왔다.

 

혼자 걷는 것이 좋은 이유는

내 감정, 특히 두려움이 잘 보이기 때문이고

그래서 무시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며

한 걸음 한 걸음이 온전히 내가 걷는 걸음이라는 느낌을 갖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여럿이 걸으면 내 걸음이 보이지 않고

내 걸음이 어느새 어떤 모양이 되어가는지도 알아챌 수 없다.

 

모델은 모델의 걸음이 있고

축구선수는 축구선수의 걸음이 있다.

내가 무엇이기 때문에 무엇 다운 걸음을 걸으려는 것이 아니라

내 걸음을 통해, 지금의 내가 어떤 모습으로 비쳐보이는지를

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서 그러는 것이다.

행여, 내가 모델의 걸음을 흉내내고 있다거나

한 때의 나처럼 마사이족의 걸음을 몇 달씩 따라허거나

그랬던 것의 흔적이라거나

그런 것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이나 불빛이 없는 길을 혼자 걷는 것은

좁고 뻑뻑한 느낌이다.

두렵고 익숙치 않기 때문일 것이다.

반대로, 사람 많고 익숙한 도시길에서 편안함을 느낀다는 것은

나이 서른이 다 되어가도록

아직, 혼자 걸을 줄 모른다는 것이겠지.

 

 

 

 

 

 

 

 

'some' 카테고리의 다른 글

6월이 끝나간다  (0) 2006.06.19
나는 차별받고 싶지 않지만...  (0) 2006.06.19
천국 가면 한국사람만 있는 거 아냐?  (0) 2006.06.19
어제 밤 10시  (0) 2006.06.14
이름 없는 개를 위하여  (0) 2006.06.14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