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카 후지모리, <네코토피아>, 문학동네,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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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란 포기의 미묘한 형태.
힘, 두려움의 미묘한 형태.
예의, 부패의 미묘한 형태.
야만, 권태의 미묘한 형태.
건실함, 고통의 미묘한 형태.
노동, 의혹의 미묘한 형태.
또한 의지는 무지의 미묘한 형태.
평등, 환각의 미묘한 형태.
선(善), 탈선의 미묘한 형태.
글, 쓰레기의 미묘한 형태.
시간, 편협함의 미묘한 형태.
푸른 하늘, 절규의 미묘한 형태.
또한 창의성은 타협의 미묘한 형태.
사고, 찌푸린 얼굴의 미묘한 형태.
잠, 열역학 제2원칙의 미묘한 형태.
법, 장애물 넘기의 미묘한 형태.
신중함, 남색(男色)의 미묘한 형태.
행복, 공포영화의 미묘한 형태.
또한 경박함은 거만함의 미묘한 형태.
음악, 테러리즘의 미묘한 형태.
오줌, 인식의 미묘한 형태(이 말을 듣고 머리를 틀어 올린 부인 두세 명이 품위 있게 기절할 뻔했다).
물질, 망각의 미묘한 형태.
애정, 복종의 미묘한 형태.
희망, 상실의 미묘한 형태.
또한 비극은 부(富)의 미묘한 형태.
사전, 편집증의 미묘한 형태.
진보, 속물 근성의 미묘한 형태.
불, 쇠퇴의 미묘한 형태.
슬픔, 잔혹함의 미묘한 형태.
민족 말살, 쐐기의 미묘한 형태.
또한 사랑은 조작의 미묘한 형태.
색깔, 휴머니즘의 미묘한 형태.
지식, 공격성의 미묘한 형태.
삶, 토사물의 미묘한 형태.
말, 냉각의 미묘한 형태.
작고 초라한 나의 자아, 무(無)의 미묘한 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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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극단적이군요. 물론 딱한 광신자는 잘해보려고 한 일이니 지나치게 탓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혀를 뽑는 것은…… 요컨대 폭력은 피하는 편이…… 사랑과 진리와 행복을 수호하는 편이 좋습니다. 우리는 문명인입니다…… 우리는 적을 죽이지 않습니다. 그저 모욕하고 명예를 훼손하고, 지저분한 평판을 퍼뜨려 사교계에 발을 못 붙이게 하고, 자녀들을 따돌리고, 재산과 직장을 빼앗고, 체면과 평안과 안정을 잃게 하고, 우울증과 알코올 중독에 빠지게 하고, 마침내 자살하기를 담담하게 기다릴 뿐입니다. 이런 것이 문명의 효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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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변호사에 대해 몇 마디 하자. 변호사는 키가 작은 – 아주 작은 – 남자로, 인정머리 없고 극단적인 성격에 엄청난 분노와 불만을 세련된 태도 아래 억눌러 감추고 있었다. 여러 해 동안 법조계에서 일해온 결과, 세상은 잠재적 범죄자와 수상한 자, 생각 없는 멍청이, 변태 성욕자, 구제불능의 너절한 인간, 급증하는 비열한 인간으로 가득 차 있다고 믿게 된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세상은 공범들로 가득 차 있다.
수많은 공범, 그들은 어디에나 있다. 공무를 방해하는 자들은 우정을 핑계 삼아, 효도를 핑계 삼아, 두려움과 협박을 핑계 삼아, 그리고 때로는 심지어 – 이것이 극치다! – 법을 핑계 삼아 범죄자를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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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후계자에게 당장 고양이와 사탕을 대령했다. 성지의 다른 문제들은 나중에 검토하면 된다. 누가 항의를 하면 최선을 다하고 있으나 워낙 복잡미묘한 문제이고 다른 이런저런 문제와도 잔뜩 얽혀 있어 대처하기가 힘들다고 요령 있게 답변했다. 어쨌든 그것은 전 정권 탓이고, 비난해야 할 것은 그 사람들이었다. 정권교체의 단맛은 이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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