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곤하고 바쁜 관계로 생각의 단서들만 남겨놓자는 수작인데...
논쟁이란 덧없다.
TV토론을 보면 이말도 옳고 저말도 옳아서 헷갈리는 경우도 있지만
때로는 확실하게
이 사람 말보다는 저 사람의 말이 더 옳은 듯 싶은 때가 있다.
그러나, 그런데, 그럼에도, 결코
상대 토론자는 토론이 끝나는 그 순간까지 자신의 생각을 바꾸는 법이 없다.
그것은 물론
그 TV토론의 성격이
어느 단체나 어느 사상이나 어느 줄기를 대표하는 사람이 나와서
단체와 집단과 줄기를 대표해서 말하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상대방의 생각이 맞는 것 같다고 해서
자신이 들고 나온 생각을 바꿀 수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논쟁 이전의 사고와 논쟁 이후의 사고가 크게 바뀌지 않는다는 문제점이 있다.
나는 A라고 생각하고 저 사람은 B라고 생각한다.
우린 논쟁을 한다.
나는 논쟁 끝에 A였던 생각을 B라고 바꾼다.
이런 일은 거의 생기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싫었던 상대방은 더 싫어지고
상대방의 답답함은 더 답답함으로 여겨지고
나는 어떻게든 내 생각을 더 빈틈없이 옳게 여겨지도록 만드는데에 있어서만
기술과 고집이 느는 것이다.
즉, 토론은
A는 더욱 A로 만들고
B는 더욱 B로 만드는 성격이 있다.
토론은 서로를 이용해서
자기가 옳음을 증명하려는 수작인데
중요한 것은
자기가 옳음
이지
진정한 옳음이 아니기 때문에
토론이 덧없는 수작이 되는 경우가 많다.
논쟁의 감정은 애정이기보다 분노인 경우가 더 많고
답답함과 무식함으로 끝나는 경우도 많다.
논쟁을 잘 하는 사람들로는
변호사, 검사,
마을 의원들이 있고
(이 부분, 조크다, 이해할지 모르겠지만, 국회의원을 마을의원이라고 한 건데...)
대부분 똑똑해 보이거나 성질있어 보이거나 무식해 보이는
세 가지 모습으로 나뉘어진다.
즉,
어느 하나
매력있어 보이지는 않는 다는 것이다.
그러니
위트 있는 검사, 자상한 변호사, 양보하는 마을 의원의 모습을
상상할 경우, 소설이나 드라마 속에서 마주칠 경우
그 현실과는 무관한 모습에 한없이 흐뭇해지는 것이다.
사람들은 논쟁을 한다.
애니콜이 좋다 싸이언이 좋다라는
현실에 놀아나는 논쟁에서부터
가수 비가 좋다 세븐이 좋다라고 하는
어른스러운 논쟁에서부터
(이것은 확실히 어른스런 논쟁이다, 이 땅 대부분의 아줌마 아저씨들이 집구석에서 하는 논쟁이니까)
논쟁의 승리자는 누구일까.
절대적으로 옳은 생각과 의견은 존재할 수 없다.
판단을 내리는 자가 누구인가,를 잘 포착해서
그 사람 비위에 살살 맞춘 논설자가 승리하거나
당시 유행이나 시류에 맞게
재빠르게 이랬다 저랬다 말 바꾸면서
순간 순간을 넘어가는 논설자가 승리하거나
하겠지만 결국
가장 믿음직한 승리자가 되는 방법은
날카로움도, 재빠름도, 눈치도, 냉철함도, 합리성도, 어벙함도, 꿈도, 변태도 아니고
매력있는 논쟁을 할 줄 알게 되는 것이다.
매력적인 논쟁이란
이를 테면
TV토론에 나온 토론자가
정말 성심성의껏 상대방의 말과 생각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그런 것
100년 간의 TV토론을 살펴 보아도 참으로 발견하기 어려운 그런 것
'some'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라질 fucking smoker! (0) | 2006.06.29 |
---|---|
처음이다 바람이다 (0) | 2006.06.29 |
방침을 사랑한다는 것 (0) | 2006.06.28 |
나는 꽃다발이 싫다 (0) | 2006.06.25 |
앞을 보고 걷는 자와 뒤를 보고 걷는 자 (0) | 2006.06.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