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1월 7일에 쓴 글. 등단 후 첫 원고청탁을 <현대시학>에서 받고 쓴 것이다.
<신작시>
오늘이 아름다운
이유가
김원국
컴퓨터 스피커는 스타킹을 뒤집어쓰고 무표정한데, 나는 잠깐 저 들에, 저 먼 들에, 눈 쌓인
땅바닥을 걷고 있는 기분이 든다 입김이 스카프처럼 떨어진다 모니터 왼편에는 언제나 그늘이 져 눈이 녹지 않고 종이컵이 몇 겹으로 자란다 누군가
내게 물을 채워주지 않을까 적당히 43도 정도 되는 다정하고 푸른 물을
빗맞은 로또 영수증이 서너 장 벽에 붙어있고, 파란색
글씨로 영화 사이트의 아이디와 비밀번호가 적혀있다 검은색 안경 케이스는 떡 하니 벌어져서 빈 담배 곽이 들어가 있고, 빈 담배 곽에는 애기들
신발 담뱃재 몇 톨 떨어져있다 질샌더 미니어쳐 향수가 비틀린 모양새로 뉴욕을 생각하고 전원 차단된 스캐너는 가만히 엎드려 동력을
기다린다
풀러놓은 전자 손목시계는 여전히 한밤중에 알람을 1분 동안 울리고, 다시 내일의 1분을 기다린다 모자도, 양말도, 신발도
다 조용하다 몇 번씩 다시 Noel을 듣고 눈이 오길 기다린다 선인장은 자라지도 죽지도 않는다 맞은 편 건물에 불이 모두 꺼졌다 물먹은 둥치처럼
도시는 겹겹이 어두워지고, 바람 따라 가로등만 졸졸거린다 가을은 똥만 싸고 지나쳤을 뿐, 털만 몇 번 스치고 달아났을 뿐, 허겁지겁 살다가도
가끔 심장의 고동소리, 떠나가는 어부의 배를 기대한다 뺨 맞는 바다 철썩이는 흰 손, 볼이 빨간 갈매기들, 오늘이 아름다운 이유가 가느다랗게
침을 뱉는다
에세이
<그래, 내가 아직 어려서
미안하다>
“맑았으면 좋겠어. 당신을 보면 구름이 너무 짙게 깔려 소나기가 내릴 것 같아.” 싸이홈피 방문자평에
등록되어 있는 글이다. 내가 왜 우울하냐고, 그 이유는 이런 것이다.
예를 들어서 2002년 대한민국 신생아 48만 4625명, 낙태아
2백만 명 이상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2백만 명의 낙태아에 대해서 10분씩만 우울해도 1년이 모자란다. 그러면 또 2003년의 낙태아들이
기다린다. 그러면 또 2004년의 낙태아들이 기다린다. 내가 시 독자들과 시인들을 좋아하는 이유는, 이런 불쾌한 이야기에도 그들이 제법 관심을
기울인다는 점이다.
나는 Radio head의 「Nice dream」같은 노래를 들으며 시를 쓴다. 내가 등단을 하고 지방 일간지에 그
기사가 실리자 제일 처음 걸려온 전화는 “기부 좀 하세요.”라는 메시지였다. 장애인들이 자그만 공장에 모여서 나무도장 같은 걸 만드는데 그걸
사주던가 아니면 무상 기부를 하라는 내용이었다. “아직 상금을 받지 않았는데요.” 그랬더니 “그럼 한 달쯤 뒤에 다시 전화해도 될까요?”라고
물었다. 그래서 나는 “싫어요.”하고 전화를 끊었다.
나는 꽤 현대적이며 도시적으로 살기 위해 노력했다. 인터넷 쇼핑도 하고, 인터넷
뱅킹도 하고, MP3 음악파일을 불법 복제하는 일에도 서슴지 않았다. 나는 부단히 인류, 전통, 본능 같은 것들로부터 도피해왔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세상은 젊은이들에게 순교자를 기대하는 것 같다.
나는 사실 아름다운 것을 써낼 자신이 없다. 어느 날 학교 후배가 “형! 사랑을
믿어요?”라고 물었다. 그래서 “우하하하!” 웃고 도망쳤다. 사랑이라, 그런 것이 어느 별인가에 깊숙이 숨겨져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 별이
내 마음 속 블랙홀 가장자리를 서툴게 서성거리며 발견되기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사랑이 매장된 별을 발견하고서는 “쿄코”나
“메텔”, “안나 까레리나” 같은 이름을 붙여 주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너무 피곤하다.
Schubert의「숭어」같은
연주곡을 들으며 때로는 춤을 춘다. 가끔 결혼식장에서 이 곡이 연주되는 것을 듣는데, 그때의 숭어는 아무래도 양식산 숭어 같은 느낌이 강하게
난다. 비싸고 아름답게 보이기 위한 두터운 화장이라든가, 줄줄이 꿰인 목걸이 반지라든가, 각종 결혼 양식 절차가 그렇게 느껴진다. “나는
결혼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더니 주변에서 한결같이 같은 대답을 한다. 조만간 생각이 바뀔 것이라든가, 제일 먼저 결혼 할 것이라든가,
후회할 거라는 말이다.
등단한 뒤에 선배 시인 중 한 분이 말씀하시기를 “앞으로 몇 달은 시 못 쓸 거예요. 나도 그랬거든요.” 하였다.
그래서 한 달 동안 30편 정도의 시를 썼다. 왜냐하면 나는 ‘나도 그러고’ 싶지 않았으니까. 나는 반쯤은 시인되기를 포기하였는지도 모른다.
나는 일종의 플레이어가 되어가고 있다.
스무 살 무렵, ‘시를 써야 시인인가 시인이 쓴 것이 시가 되는가’를 고민했었다. 시를 써서 시인이
될 것인지, 시인이 되어서 시를 쓸 것인지 결정하고 싶었다. 나는 이것이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했다. 나는 먼저 시인이 되기로 했다. 그래서 내가
하는 생각과 말과 행동을 글로 옮기면 그것이 시가 되는 삶을 살고자 했다. 그러다가 포기했다. 나는 내가 보통의 남들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똑같이 학교를 다니고, 똑같이 돈을 벌며, 똑같이 비겁하였고, 똑같은 욕구를 지녔다. 그래서 그냥 시를 써서 시인이 되었다. 트레이닝,
트레이닝, 트레이닝, 쓰고, 쓰고, 또 쓰고.
S.E.N.S의 「Like a wind」를 듣는다. Stevie Nicks의 「Stand
by me」를 듣는다. 내가 멋대로 바람처럼 살다가 “나를 기다려줘요” 말하더라도 누가 내 말을 들을 것인가, 생각하면 우울해진다. 무언가
생각나야 할 것이 생각나지 않으면 한없이 답답하다. USB를 몇 개씩 들고 다니면서 필요할 때마다 머리에 쿡, 꽂아서 사용했으면 좋겠다. 오늘은
꽤 피곤하다. 어딘가 짐승 우리 같은 곳에 들어가서 한참 동안 으르렁거리다가 돌아왔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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