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0월 30일에 쓴 글, 이때 날씨 좋았는데... 가을이라...
학자들의 주된 활동 중의 하나는 용어정리다. 우리가 흔히 연줄, 빽, 이라고
부르는 것들을 경제학자들은 '관계권력'이라고 표현하였더군. 남들이 연, 빽, 이라고 부를 때 '관계권력'이라고 부르면 유식해 보일테니까
알아두자, 고 생각하면서 <디지털 권력> 책을 덮은지 대충 15일이 지났다.
어제는 금요일, 수업을 제끼고 서울로
올라와서 <자살포럼>에 참석했다. 자살에 대한 심포지엄 및 세미나 및 포럼인데 뭐라고 봐도 무방 할 것 같다. 좌장께서는 시작부터
끝까지 4시간 반을 자리를 뜨지 않고 지켜봐 주신 좌중들께 감사한다는 말로서 포럼의 끝을 맺었다. 그러나 사실 나로서는 포럼 참가자분들께 훨씬
감사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인간활동에 값을 매긴다면 아무래도 좌중들보다는 각계 명예교수 및 교수 및 의사 및 임상심리사 및 선임상담원 및
이사장들로 구성된 발표 및 토론자들의 시간이 보다 고가일테니 말이다.
아무튼 나로서는 대단히 만족스러운 자리는 아니었는데, 그
이유는 그 포럼의 취지 및 전제가 "자살은 나쁜 것"인 상태에서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대체로 '숙고된 자살' 뿐만 아니라 '충동적
자살'까지도 긍정적으로 보기 때문에 그에 대한 논의가 부분적이어서 아쉬웠다. 참가자 중 가장 인기를(긍정의 대상으로서건 부정의 대상으로서건)
끌었던 사람은 '김00'의사였는데, 국내 최초로 98년 경에 최면임사퇴행을 실시한 의사라고 한다.
자아, 이제 관계권력 놀이를
해보자면, 쉬는 시간이 주어졌을 때 사람들은 어느 곳으로 모이는가를 살펴보면 흥미롭다. 논평시간의 전후 쉬는시간에는 의견이 다른 각계 전문가들이
한 공간에 섞여 배회하는데, 이 경우 여론은 누가 똑똑하게 말하는가가 아니라 누가 권력을 지닌 사람인가에 따라서 흔들린다. 만약 비슷한 상황에
내가 참석하게 되었는데 내가 별로 똑똑하게 말할 것 같지 않거나, 여세가 불리하게 돌아간다면, 종교의 힘을 빌리는 것도 편리하다. 예를 들어,
저는 절실한 기독교신자입니다, 혹은 저는 참된 불교신자입니다, 라는 발언을 미리 해두었다면, 그쪽 사람들이 내게 몰려들것이다.
포럼이 열린 곳은 삼성역 코엑스 옆에 있는 봉헌사인데, 그곳에서는 스님의 편을 들어야 밥을 얻어먹을 수 있다. 그곳은 내가 가본
절들 중에서 가장 비싼 주차장을 지니고 있었는데, 비싼 주차장에는 고급 외제차들이 가득해서, 참으로 신선한 종교의 바람을 느낄 수 있었다.
태평양에서 구멍난 유조선의 옆구리를 타고 검은 부채모양으로 퍼져나가던 원유의 그 부드러운 질감으로 승복을 문질러대고 싶었다. 아무튼 서투른
연설가들은 다들 '관계권력'을 이용해서 예수님이 말씀 하셨고, 성경 어느 구석탱이에 뭐가 있고, 부처께서 말씀하시길, 짜라투스트라가, 니체가,
보르헤스가, 코란이, 달라이 라마께서, 이런 식으로 '관계권력'을 내세우려 하고는 한다.
질문요청이 있었을 때, 나는 두 번째로
질문하였는데, 질문자는 총 세 명이었다. "최면요법을 어느 곳에서 받을 수 있으며 실질적으로 비용은 얼마나 합니까?"라고 물었더니, 그 김00
의사는 "내가 알기로는 아직 한국에 믿을 만한 최면요법 시술하는 곳이 없다. 나의 경우는 환자마다 다르다."이렇게 대답했다. 참으로 실질적인
대답이란 무엇인지 자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감동적이었고, 이 의사가 그동안 주변에서 얼마나 집중포화와 질타와 의심의 눈길을 받았으면, 모든 질문에
이토록 능숙하며 '실질적'인지 감탄하였다.
이 의사의 쉬는 시간 행동은 매우 독특해서, 사람들이 접근하면 이리저리 도망다녔다.
몸으로 나타내는 메시지인즉, "귀찮다. 꺼져라." 이런 식인데, 그 당당함과 교만함이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나는 거의 10년 째 싫을 때
"싫다"고 말하기를 연습하고 있는데, 너무 어려워서 승질이 난다. 집에서 사진을 주욱 늘어놓고서 "싫다! 싫다! 너도 싫다! 싫어! 꺼져!
닥쳐!" 이렇게 연습한 날도 있다. 내가 이렇게 직접적으로 "싫다"는 말을 못하는 것도 관계권력을 잃을까봐 두렵기 때문이다. 학교 학과생활이라는
좁은 관계 네트워크 속에서, "냉정한 놈"으로 찍히면, 학과 내에서 행사할 수 있는 권력의 상당부분을 잃을 수밖에 없다.
오늘은
부모님을 대신해서 검찰청 예식장을 다녀왔다. 모 판사의 딸이 결혼을 하고, 이 모 판사와 우리 부모님이 '어떤식'으로 아는 모양이다. 그러나
부모님이 사실은 별 사정이 없음에도 가기를 기피하시는 걸 보면 정말 반갑고 친한 관계가 아니라는 건 당연하고, '연을 끊기가 두려운', '행여
섭섭하게 생각할까봐 염려가 되는' 그런 판사였던가 보다. 그리하여 서초동 검찰청 예식장에서 다시 한번 화려한 '관계권력' 모색의 장을 관람하게
되었다.
내가 결혼을 개떡같이 생각하는 이유중에 하나는, 한국식 결혼에서 결혼 당사자 두 명을 빼면, 대부분의 영향관계는 양가의
부모로부터 파생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경제권력, 관계권력 어느 식으로든 그렇다. 어떤 면에서 '결혼식'이나 '장례식'은 '자기권력측정식'이다.
예를 들어서 연예인들의 결혼식을 보면, 그 결혼식에 누가 축가를 불렀는가, 누가 주례를 섰는가, 어떤 연예인이 얼마만큼이나 참여하였는가, 다른
인사들은 누가 참석하였는가가 그 주최자의 권력을 짐작케 한다. 주요 공무원이나 의원들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연예인이건
비지니스맨이건 로또 당첨자건 스포츠맨이건 정치인이건 내가 생각하는 최대 권력자는 아니다. 내가 생각하는 최대 권력자는 '어린이들'이다. 왜냐하면
어떤 권력을 지닌 사람도 '젊음'에 대한 동경은 어쩔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내 장례식장이 나의 권력을 측정하는 장소라면, 나의 방문객들은
죄다 어린이들이길 바란다. 그리고 이들이 죽어 납짝해진 나를 '선생님, 어르신, 오빠, 형, 아저씨, 실장님, 마스터 등등'의 어떤 칭호로도
불러주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아이들이 대충 66명 정도가 떳떳하게 내 장례식장으로 쳐들어와서 "원국아! 죽었냐!" 라고 말해주길 바란다. 즉
나를 친구로 생각해주길 바란다.
관계권력에 있어서 권력자와의 최대 근접점은 어디인가. 부모와 자식인가, 애인인가, 남편인가,
정부인가, 부하나 선배인가, 그저 아는 사람인가, 같이 범죄를 공모한 사이인가, 형제나 의형제인가. 훗. 내가 그리는 최대 근접점은
'친구'이다. 왜냐하면 '친구'란 그 자체로 대등한 관계이기 때문이다. 남편, 부모, 자식, 형제, 스승, 친척, 선배 등은 어떤 식으로든
위치관계가 존재한다. 그러나 친구란 그런 것이 없다. 따라서 권력자와의 최대 밀접 관계는 '친구'라고 생각한다. 물론 무촌관계인 부부나,
혈연관계인 자식이나, 권력의 동반자도 존재하겠지만, 그것은 관계에 의지한 관계이다.
남편이기 때문에, 자식이기 때문에,
공동투자자이기 때문에 얻는 관계이다. 그러나 친구는 그런 관계가 없이 이뤄진 관계이다. 때문에 나이 차나 지식의 차이 부나 권력의 차이를
극복하여 맺어질 수 있는 관계이며, 그런 관계야말로 내가 바라마지 않는 권력자와의 합치다.
그렇게 나는 내 장례식장으로 권력의
허리케인, 즉 66명의 어린 '친구'들이 방문하길 바란다. 나는 세상 살 거 왠만치 살고, 슬픔, 고통, 다 뒤섞인 나른한 '어른'들이 나를
위해 울어주길 바라지 않는다. 성인남성이 처녀를 동경하듯이, 어린시절과 순수를 동경하듯이, 나는 다른 것들이 섞이지 않은 슬픔을 가져갈 수 있는
친구들이 방문해주길 바란다. 그리고 모든 장례식이나 절차를 이런 '어린이들'이 진행해주기를 바란다. 이들은 성의없이 '관례대로' 진행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주변에 '어른들만 없다면' 관례적이지 않게 성의를 다해서 무언가를 하려고 할 것이다. 그것이 나의 권력이며, 대통령도 부러워할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학교 내의 관계권력은 비교적 단순하지만 그래도 있을 건 다 있다. 예를 들어서 '장학복지과' 등의 시설에
학생이 개인으로 방문할 경우 자칫 불쾌한 경험을 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그러나 '학생회장' 으로 방문할 경우는 그곳의 친절도가 조금 다르다.
더군다나 '학과장교수님의 심부름'으로 방문할 경우는 '세상이 참 따듯하구나'라고 착각하게 될지도 모른다. 교수님이 미리 전화를 넣어주거나,
교수님의 손을 맞잡고 방문한다면 역시, 그곳이 찜질방처럼 아늑하게 느껴질 것이다.
학과에도 역시 관계권력은 늘어붙은 짜장처럼 아주
먹기가 좋다. 일단은 학생들이 '파워있다'고 생각하는 교수님의 총애를 받는 학생은 관계권력 3점 금메달이 가깝다. 그러나 승부는 모를 일, 교내
최고 미녀를 동생으로 지니고 있다면 관계권력 4점 획득, 부모님이 일류기업의 간부라 취업을 시켜 줄 수 있는 학생이라면 관계권력 5점 획득,
자! 승부는 났는가! 했더니만 총장아드님이 여기 있었네, 관계권력 8점!
변호사를 선임하려면 판사직 퇴임을 한 변호사를 선임하라.
이것은 법조계의 불문율일걸. '정관예우'가 있어 선배 판사가 변호사로 나올 경우, 현직 판사의 판결은 '갈대잎찬송가'를 앞세우며
'정관예우당당곡'을 뒷세우며 로마를 향해 쭈욱 뻗은 길을 보여준다고 한다. 야아, 그것 참 찬란하겠다.
그리하여 나는 아까부터
지갑 속 명암들을 탈탈 털어서 나의 관계권력치를 계산하고 있는 중이다.
마임이스트 이찌로상. 미스타페오 까페 명함. 오준석
헤어디자이너. 강원일보사 000 편집국 여성부 기자. 제프특수효과팀 방태호 리더. 피카소안경 서재영. 세종아파트 신효정. 코리아
엔터프라이즈(음향,조명,무대, 특수효과, 발전기) 장보성 과장. 코리아 엔터프라이즈 조명부 김현우. P&L 면접논술교실 이영애. 대교출판
홍보디자인팀 정원식. 한림학보 김혜민 편집장. 드림커뮤니케이션즈 AE 이종숙. 유퍼스트 커뮤니케이션 카피라이터 신경혜. 텔코웨어 기술지원팀
이종구. SK텔레콤 운교대리점 김명옥. GTB프로듀서 이광구. 웹펜 기자 장지현. 사랑의장기기증운동분부 기자 이지선.
이상이 내가
들고다니는 지갑 속 관계권력 증서내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