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0월 5일에 쓴 글, 쩝
대부분 한 강의실 내에 자신이 선호하는 자리가 있기 마련이다. 내 경우는 과목에
따라서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앞자리에 포진한다. 봄의 경우, 앞자리 중에서도 창가에 바짝 붙어 앉는다. 한 번 차지한 자리는 학기 내내 고수하기
위해 수업시간보다 빨리 강의실을 찾게된다. 이번 학기의 경우 대체로 앞자리 우측부분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사실 내가 말한 앞자리는 맨
앞자리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나보다 앞에 누가 앉는 것도 아니다. 어쨌거나 앞에서 몇 번째 자리건 간에 나와 교수 사이에 다른 사람의 머리통이
가로막는 것은 기분이 나쁘고, 그렇기 때문에 내 앞자리에 누군가 있는 걸 참기 싫어한다. 그래서 사람이 많은 강의실의 경우에는 가장 앞줄에
앉게된다.
이번 학기에 내가 앉는 자리는 축구 포지션으로 치면 라이트 윙의 자리이다. 축구를 할 때 나는 거의 수비를 맡게 되는데
수업시간에는 언제나 공격수의 입장이다. 최전방에서 교수의 침을 받아내며 수업에 돌진하기는 좀 그렇고, 조금 빗겨난 전방에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는 것이다. 축구를 할 때 라이트 윙을 해본 적이 거의 없어서 잘 몰랐는데, 라이트 윙이란 이런 것이다. 플레이 타임 내내 긴장해
있어야 하며, 언제나 골을 노리고, 반격을 준비하며, 강력한 돌진성을 지니고 있다. 내 수업 참여 방식은 대체로 이렇다.
그렇다면
골은 무엇일까. 학점일 수도 있고, 자부심일 수도 있겠지만 나의 경우는 '진보'이다. 게임(수업)이 시작한 이후 감지 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발전'을 절치부심 나는 소망한다. 휴강이란 얘기치 못한 게임무산이며, 그것은 스트레스로부터의 해방, 안락을 준다. 그러나 골의 기회를
빼앗는다. 등 뒤의 학우들은 모두 적진의 관객들이다. 나를 야유하며 나의 승리를 그리 기대하지 않는다.(사실 그냥 무관심하다.) 발표를 하거나
질문을 준비해 오는 학우들은 팀메이트로 볼 수 있다. 때로 그들은 내게 골을 어시스트 해준다.
바로 옆자리에 달라붙은 학우들의
경우는 상대편 선수로서 내게 태클을 건다. 핸드폰을 쓰거나 '담소'를 사용하거나 코 훌쩍이는 소리로 집중을 방해한다. 수업의 경우는 그리 상관
없지만, 영화를 볼 경우 이들은 무적에 가깝다. 깨진 소주병을 들고 경기장을 고래고래 돌아다니는 격으로 과자를 씹어대고, 핸드폰 광선을
쏘아대고, 오징어를 휘두른다. 인류의 적은 '도구'가 아니라 인류일 것이다. (만약, 음식물 반입을 금지하는 상영관을 원한다면 내가 아는 극장
중에는 [하이퍼텍 나다], [광화문 씨네큐브]가 있다.)
라이트 윙이란 포지션을 말한다. 이것은 곧 브랜드 포지셔닝과도 같다. 나를
하나의 선수, 혹은 하나의 학생, 혹은 하나의 인간, 혹은 하나의 브랜드로 볼 경우 좌석 점유는 나를 포지셔닝 하는 데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때로 어떤 좌석을 차지하는가 하는 것은 기호의 문제를 넘어서서 전략적 관점을 필요로 하기도 한다. 내게 직접적인 이득을 주는 커뮤니케이션
상대가 누구인가에 따라서 좌석의 선택은 달라진다. 만약 이성의 호감을 바란다면 Next to the she가 될 것이다.(그런면에서 이 수업은
전략적 좌석 포지셔닝이 불가능하다.) 친구와의 사교를 바란다면 구석지며 폐쇄적인 좌석을 맡아야 할 것이다. 모든 학우들의 관찰이 필요하다면 가장
뒷좌석이 필요할 것이다. 교수로부터 얻을 이익이 필요하다면 교수의 눈에 잘 뛰며 목소리의 전달도 잘 되는 곳이 필요하다.(위치에 따른 심리적
영향관계를 미리 공부해오는 것도 좋을 것이다. 예를 들어 미팅에 나가서는 가장 좌측이 좋다고 한다.)
브랜드 포지셔닝의 관점에서도
우측 앞자리는 강력한 우월성을 지닌다. 포지셔닝의 방향을 잡았다면 그에 맡는 이미지 전략이 필요하다. 라이트 윙과 무기력한 이미지는 좋은 매치가
아니다. 축구에서 라이트 윙을 떠올릴 때 떠오르는 그 이미지가 수업에서도 라이트 윙으로서의 적당한 이미지이다. 한국 국가대표 라이트 윙으로는
최태욱선수나 최성국 선수 등이 있다. 레프트 윙보다는 라이트 윙이 어감이 좋다. 세면대 위로 물을 부으면 물의 회전은 반시계방향, 즉 라이트
훅의 궤도를 따른다. 위치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국회의원들이 모두 어려서부터 저리 꼬질꼬질하진 않았을 것이다. 라이트 윙. 그게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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