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목요일 같은 월요일이었는데

여전히 오늘도 목요일 같은 화요일이다

 

마룻바닥에 누워 만화책을 보다가

부침개를 부쳐먹었다

라고 일기를 쓸 수 있는 오늘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비가 올 때 민감해지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내게 몹시 감격적인 일이다

 

'민들레'라는 사람이 있다

아마츄어 마임 동아리를 3년 정도 했었는데

나보다 1년 정도 먼저 하고 있던 사람이고

춘천교육대학에 다니고 있었다

 

'민들레'라는 이름이 이 마임 동아리의 다음까페에서

이 녀석이 사용하던 닉네임이었고

당시의 내 닉네임은 '꽃순이'였다

 

얘나 나나 마임에 대한 재능은 별로 없었지만

그런 류에 잘 빠지는 타입이었고

한동안 친하게 지냈다

 

얼굴은 영화배우 '장진영'을 닮아서 예쁜 편이었고

그런 이유로 친해지게 된 면도 없지 않아 있다

 

얘는

올해 26살, 혹은 27살 정도 되었을 거다

그리고 여전히

태어나서 한 번도 화장을 한 적이 없을 것이다

어쩌면 죽을 때까지도

한 번도 화장을 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면

알게 된지 어언 5년이 되어가지만

왜 화장을 하지 않느냐고 물어 본 적이 없다

그만큼 맨얼굴이 잘 어울린다

 

살다보니

운동화 밑창이 뚫어지도록 편하게 한결같이

신고다녀 본 것이 10년이 넘었다

 

살다보니

남의 눈, 남의 코, 남의 입을 신경 쓰게 되고

옷에서 냄새는 나지 않는지 행여 신발 벗는 장소에서 창피를 당하지는 않을 런지

하는 생각에 속옷도,  운동화도 자주 갈아신게 된다

지금 내 운동화는 다섯 켤레다

 

민들레는 동네 시장에서 만오천원짜리 운동화를 사서

아무렇게나 신고다니고는 했는데

그녀의 동생이 보다 못해 백화점에 데려 가서는

'엄부로' 운동화를 사주었다

 

몇 달 만에 본 어느 날

운동화가 바뀐 것, 더군다나 소위 브랜드로 바뀐 것을 보고 놀라서

좀 내놔 보라고 그랬더니 홀랑 벗어주는데

얼마나 신고 다녔던지 발냄새가 후끈 풍겼다

 

같이 밥을 먹다가 부웅- 하고 방귀를 뀐 적도 있다

 

그래서 정나미가 쏙 떨어지기도 하였으나

그것이 '품위 없다'고 볼 정도로 내 눈이 썩은 상태는 아니었다

 

싸우기도 자주 싸웠는데

주로 술 먹고 감정적이 되어서 그랬다

민들레는 교회도 안다니는 주제에 상당히 사람을 신뢰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었고

지금도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

 

반면 나는 술만 마시면 제법 냉소적이었고

화창한 마음씨를 가진 사람들을 보면 가만 두질 못하는 성격이었다

다행히도

이 세계가 그렇듯

마임 동아리의 멤버들 중 상당수는 나와 같은

비관적 세계관을 많이 지니고 있었고 그들은 내 편을 들었으므로

민들레는 종래

그래도 우리가, 그래도 사람이, 그래도 그러면 너무 슬프지 않니,

라는 말을 감정 담아 얘기하다가 울먹이고는 하였던 것이다

 

나도 가끔 멋부림으로 해 본적이 있지만

민들레는 정말로

길에 엎어진 노인에게 가진 돈 전부를 주고 집까지 걸어가서 굶는

그런 사람이었는데

새우깡 한 봉지와 캔맥주 하나에 정말로 감격해 하는 녀석이었다

 

얼마간 휴학을 하고

마침내 살짝 늦은 나이로

민들레는 교육대학을 졸업하게 되었고

제 1 희망지역으로 강원도 철원,

제 2 희망지역으로 강원도 태백,

등 등

산골, 농촌 분교를 희망했다

 

너 시골 학교 가서 애들한테 담배나 가르치려고 그러지?

(- 민들레는 담배쟁이이기도 하다 꽁초도 주워 핀다)

라고 말은 했지만

그녀가 얼마나 소위 순박한 어린애들을 좋아하는지는

사실 대부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녀는 아마,

학교 아이들에게 보다 애정을 쏟기 위해서라면

결혼도 안하고 자기 아이도 낳지 않을 것이다, 라는 편에

나로 하여금 돈을 걸게 하는 그런 사람이다.

 

결국, 바램만큼의 시골은 아니지만

원주의 어느 한적한 동네에서 초등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내가 늘 하던대로

한국 교육이나 한국 학교들의 문제에 대해서 요목조목 따지고 들면

불끈해서는 그래도 나아질 거라는 식의 얘기를 하고는 한다

 

그러니까 오늘

내가 나뭇마루에 누워 비 냄새에 몸을 돌돌 말고

흥흥 거리다가 출출해 질 때

비닐봉지에 부침가루랑 소주나 두어병 넣어가지고 문을 꽝, 차고

들어서면서 히히거릴 녀석 중 하나는 이 녀석이다

 

하염없이 목요일 같은 답답한 사무실 안에서

민들레한테 문자 한 통 보내볼까? 생각하지만

그러나 결국 보내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내 답장이 올 테고

그러면 또 답장을 해야 하는 게 귀찮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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