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1월 19일에 쓴 글.
나는 주로 의대화장실을 이용해. 가끔씩 멋모르는 의대신입생들이 복도에서 내게 인사하는
것도 재미있고, 대체적으로 의대화장실이 깨끗한 편이며 화장지가 떨어지는 일도 거의 없거든. 아, 그리고 무엇보다도 조용해서 좋아. 그런데 오늘은
의대 4층 화장실을 들어갔는데 담배연기가 자욱한거야. 한 toilet 위로 연기가 스물스물 기어오르고 있었어. 문을 냅다 걷어차고서 "야! 이
미친새끼야! 건물 내 금연인 거 모르냐?" 고 그 사람 인생 중에 아주 당혹스러웠던 한 아침을 연출해주고싶었어. 아침이면 나는 특히 좀 예민할
때가 있거든.
하지만 참았고 의대 3층 화장실로 내려갔어. 그리고 생각했지. 물론 건물 내 금연을 4층 그사람이 찬성한 것은
아닐거야. 하지만 건물 내 흡연이 허용된다고 하더라도 화장실에서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해. 왜냐하면 그 사람의 담배연기는 천장을 타고 기어나와서
담배 연기를 불쾌하게 생각하는 사람의 옷에 들러붙고 하루종일 이 사람을 짜증스럽게 만들 수도 있으니까 말야. 그러니까 담배를 피려면 우주복 같은
것을 입고서 그 헬멧을 밀폐되게 착용하고서 그 안에서 피었으면 좋겠어. 바깥으로 빠져나오지 않게. 그리고 모든 흡연자에게는 필히 이 흡연복이
지급되었으면 좋겠어. 물론 나도 가끔 담배를 펴. 특히 담배가 간절할 때는 기분도 그리 명쾌하지 않을 때일 때가 많고, 어서 빨리 담배를 피고
싶다는 욕구가 강해서 다른 생각들은 잘 하지 않게 되더군. 뭐 흡연복을 패셔너블하게 만들고 나이키식의 광고를 대박으로 때려대면 알아서들
착용하겠지만.
그래서 좌변기에 앉아서 흡연복의 디자인과 광고아이디어를 구상하고 있는데 문짝에 낙서가 보였어. 나는 강대 화장실도
자주 가는 편인데 특히 천지관과 중앙도서관, 미래관은 층별로 모두 가보았지. 그런데 재밌는 것은 한림대 화장실에는 간간이 강대이야기가 낙서로
나타나는데, 강대 화장실에서는 아직까지는 한림대이야기를 찾아보지 못한 것 같아. 그 중 기억나는 것은 한림대 화장실 중 한 군데인데 "어젯밤
강대 무용학과 여자를 따먹었다..(묘사) 등등등." 이런 낙서도 있어. 그러니까 말야 이것이 사실이든 거짓이든 간에 이런 낙서를 화장실에
매직까지 챙겨와서 하는 사람은 스트레스가 많은 사람인 것 같아.
아무튼 오늘은 어떤 의대졸업생이 써놓은 낙서를 보았어. 내용은 대충
이래. "오랜만에 모교 화장실을 찾아오니 감개가 무량하사 그때 젊은 나는 얼마나 순수했으며 방황하였고 지금의 나는 타협쓰레기 너절한
사회인..." 아, 의대생들도, 의사들도 이런 생각을 하는구나 생각했지. 그런데 그 밑에 답글이 나를 화나게 만들었어. "그럴 시간 있으면 더욱
노력하고 노력하겠다. 한심하다." 이런 식의 답글이었어. 그러니까 이 답글을 쓴 사람은 말야 가로 10mm 세로 10mm 프레임이 뇌 중앙에
시술되어 있는 거야. 그래서 절대로 이 가로 세로 10mm프레임을 벗어나는 사고를 할 수가 없는 거지. 무슨 말인가 하면, 아주 작고 보잘 것
없고 평범한 사고의 기준을 벌써부터 뚜렷하게 갖고 있어서 인조인간 같은 느낌을 준단 말이야.
이 사람인들 이렇게 살고 싶었을까만은
아마도 어려서 큰 두개골 난파 사고를 당했을 거야. 그래서 뇌가 줄줄이 흘러 거실 카페트를 덮어버린거지. 그러자 이들의 부모가 고무장갑을 끼고서
뇌를 주워담고 이리저리 맞춰보았어. 그런데 뭔가 중요한 것들이 없어졌어. 그 중요한 것들은 이 아이가 20대가 되었을 때 이 아이를 지배할
엄청난 꿈과 상상력과 방황의 씨앗이었을지도 모르지. 아무튼 그걸 바퀴벌레가 물어갔나봐. 그래서 이들 부모는 골프채를 잘라서 프레임을 만들고
그것을 뇌 속에 집어 넣어 놓은 거야. 그래서 이 아들은 나이를 먹어서도 늘 배운데로 틀데로 밖에는 생각을 하지 않고, 범죄자나 거지, 창녀
같은 이들은 무조건 욕하면서 살아가게 계획되었던 거지. 그러고보면 이 답글자의 탓만은 아닌건데 아무튼 안타까운 일이야.
한 번은
김선일씨 사건에 관해서 고스트네이션 게시판에 글을 쓴 적이 있어. 사람 한 명 죽은 걸로 뭐 그러냐고. 물론 예상했던 데로 상당한 답글들이 나를
공산당 대하듯이 올라왔어. 정말이지 단순한 사람들이 너무나 아름답지 뭐야. 그런 식의 격렬비열한 논쟁은 컨디션만 좋다면 환영이야. 그런데 한
답글이 나를 또 화나게 하였어.
".......... 인간이......그러니까........그렇게 살면 안 됩니다."
이거 보여?
"그렇게 살면 안 됩니다." 이게 바로 그 프레임이야. 어려서부터 불법 뇌수술을 받거나 두개골이 심하게 깨져서 단호박 말린 바가지를 대신 시술해
놓은 사람들이 무척 많은 것 같아서 슬펴졌지.
그러니까 나는 이 말 뿐이 할 수가 없었어.
"왜요?"
이사람의 프레임을
따져보면, 인간은 그렇게 살면 안 되는 그런게 있는 것 같아. 그러니까 납치되어서 억울하게(?) 죽은 한국 사람을 불쌍하게 생각하고 하루종일
추모하는 다수의 사람들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나의 삶)은 잘못된 삶이라는 거야. 그렇다면 심지어 실제로 이 한국사람을 잡아죽인 이라크
테러리스트들의 삶은 뭐라고 해야 되는 거지? 이 프레임에 따르면, 나 역시 그렇게 살면 안 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인데, 이 프레임에 따를
경우 이라크 테러리스트들은 거의 사람이 아니게 보일 것도 같아. 하지만 내 생각은 달라. 잔인하게 김선일 씨를 납치해서 죽였다고 해서 그들의
삶이 부정당할 순 없지. 그러니까 그들이 돌연변이처럼 문득 심심해서 그런 일을 한 것이 아니고, 인간들, 국가들, 권력들 속에서 치받히다가 그런
일을 '스스로' 한 것이니까 난 받아들여야 된다고 생각해. 다만 그에 대한 좋다 나쁘다 평가야 자유겠지만.
소년원을 단 한 번
들어가 본 적이 있어. 마임워크샵 인턴으로 소년원생들에게 져글링을 가르쳐주러 갔지. 그 애들은 잘못된 삶을 살았다거나, 실수한 삶을 살았던 것은
아니야. 도둑질을 했거나, 강도짓을 했거나, 강간미수를 저질렀던 것이지. 그것은 나쁜 짓을 한 것일 수 도 있고, 분명 남에게 피해를 주는
짓이었던 것이기도 해. 화장실에서 담배 피는 것처럼 말이야. 나쁜 자식! 개자식! 그렇지만 나쁜 짓을 했다고 해서 형편없는 인생, 그렇게 살면
안 되는데, 쯧쯧 아무리 힘들어도 이겨냈어야지, 라고 함부로 말 하면 곤란해. 그건 그녀석들의 삶이라고. 이라크 테러리스트들의 삶이고,
김선일씨의 삶이겠지. 그런 '사건'에 관련해서 여러 의견을 싸바싸바하는 건 멋진 일이야. 하지만 "한심하군" 이런 식의 근거없는 평가는 화가
나게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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