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페터 회, 마음산책

 

 

도그지어(dogs ear)라는 건 개의 귀만을 뜻하지 않는다. 그건 문자를, 그리고 문자로 표현되는 세계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이 행할 수 있는 가장 예의 바른 행동이다. 도그지어라는 건 책장의 한쪽 귀퉁이를 삼각형으로 접어놓는 일을 뜻한다. 매력적인 사람을 만날 때, 나는 그 순간을 그렇게 접어 놓는다. 세상을 살아간다는 건 어떤 점에서 그렇게 접어놓은 삼각형들을 책임진다는 듯이기도 하다. 스밀라를 읽는 일은 그 일이 얼마나 깊은 사랑에서 비롯하는 것인지 이해한다는 뜻이다. 김연수(소설가)의 추천사 중()

 

 

 

남자들의 우는 모습을 보는 것은 언제건 내게는 마음 편한 일이 도지 못할 것이다. 어쩌면 운다는 것은 자존심에 얼마나 치명적인 일인지 알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쩌면 울음은 너무나 비일상적인 일이어서 언제나 남자들을 유아기로 되돌려놓는 것이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수리공은 눈물을 훔치는 것도 포기한 단계에 이른 상태였다. 그의 얼굴은 점액으로 만들어진 가면 같았다.

 

 

 

다른 사람들이 교회의 축복을 느끼는 방식으로 나는 고독을 느낀다. 고독은 내게 있어서 은혜의 불빛이다. 나는 내 방문을 닫을 때마다 스스로에게 자비를 베풀고 있다는 것을 자각한다. 칸토르는 학생들에게 무한의 개념을 이렇게 설명했다. 무한한 수의 객실을 가진 호텔 주인 한 사람이 있고, 이 호텔 객실에는 손님이 모두 차 있다. 거기에 손님 한 명이 더 도착한다. 그래서 호텔 주인은 1호실에 있는 손님을 2호실로 옮겨준다. 2호실에 있던 손님은 3호실로 옮긴다. 3호실 손님은 4호실로. 이런 식으로 계속된다. 이렇게 하면 1호실은 새로 온 손님을 위해서 비워진다.

이 이야기에서 내 마음에 들었던 점은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손님들과 주인 모두가, 한 손님이 자기 방에서 평화와 고요를 얻을 수 있도록 무한한 수의 작업을 지극히 당연하게 수행한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고독에 대한 커다란 존중의 표시다.

 

 

 

나는 슬퍼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경찰관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율리아네에게는 기댈 수 있는 어깨를 빌려준 뒤 그녀를 친구 집에 데려다주고 돌아오느라 나의 슬픔은 내내 왼손에 꼭 틀어쥐고 있었다. 이제는 내가 슬픔에 무너질 차례다.

 

 

 

널리 알려진 생각으로는 아이들의 마음은 열려 있고, 진정한 내적 자아는 밖으로 저절로 스며나온다고 한다. 그런 말은 죄다 틀렸다. 아이보다 더 비밀스러운 사람은 없으며, 아이보다 더 절실하게 비밀을 지켜야 할 필요가 있는 사람도 없다. 그것은 항상 아이들을 깡통 따개로 따서 안에 뭐가 들어 있나 보면서 그 안을 더 쓸모 있는 잼으로 바꿔줘야 하는 게 아닌가 궁금해하는 세상에 대한 대응이었다.

 

 

 

내 어머니가 돌아오지 않게 되었을 때, 나는 어떤 순간도 마지막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인생의 어떤 것도 단순히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가는 통로가 될 수는 없다. 마치 남겨놓고 가는 유일한 것인 양 매 걸음을 떼어야 한다.

 

 

 

마지막에서 두번째 신문 기사는 1949년 신문에서 찾아낸 것이었다. 거의 글로 매춘을 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기사였다. 덴마크 빙정석 주식회사의 새 이동 트럭에 대한 열광적인 묘사와 함께 채석장의 깊은 채광 지구로부터 지표면까지 광석 운반을 원활히 할 수 있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썰매 여행에서 딱 하나 금지된 것이 있다면 징징대는 것이다. 징징대는 것은 바이러스로, 치명적이고 전염성이 높아 쉽게 감염되는 질병이다. 나는 징징대는 소리를 들어주는 것을 거부한다. 감정적 치졸함의 향연에 같이 엮이는 것을 거부한다.

 

 

 

그가 데리고 간 테이블 주위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그 사람들은 빈 탄피 같았다. 그 순간 이 방 바깥에도 삶이 있다는 것을 상상하기란 실제로 불가능할 것이다. 아마 바깥의 삶이란 없을지도 모른다.

 

 

 

나한테서 좋은 점은 별로 발견할 수 없을 거야. 나는 너무 술을 많이 마시지. 담배도 너무 많이 피우고. 일도 너무 많이 하고. 내 가족은 나를 무시하고. 어제 욕조에 누워 있을 때 우리 집 큰아이가 와서는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말하더라고. 아빠, 아빠는 어디 살아요? 내 인생은 값어치가 별로 없어.

 

 

 

그때서야 나는 베냐가 모리츠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 호소하는 듯한 애교 밑에 있었던 것은, 모든 것을 참아내고 필요하다면 어떤 탱크 전투라도 불사하지만 그 대가로 세상을 요구하는 군사 작전 같은 사랑이라는 것을. 그때서야 또한 그녀가 나를 항상 증오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시작하기도 전에 그녀가 이미 패배했다는 사실도. 모리츠의 마음속 어딘가에는 그녀가 결코 도달할 수 없는 풍경이 있다. 내 어머니를 향한 감정의 고향이.

 

 

 

나는 기차를 타고 링비 역으로 가서는 거기서 버스를 탔다. 어떤 면에서는 열일곱 살이었던 때와 똑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절망이 나를 차디찬 상태로 멈추게 할 것이라 생각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절망은 잘 싸여져 어두운 구석 안쪽 어딘가에 있으면서 나머지 다른 기관을 작동시키고 실용적인 문제를 처리하도록 한다. 이런 문제들은 별로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계속 나아갈 수 있게 해주고, 어쨌거나 여전히 살아 있다는 사실을 보증해준다.

 

 

 

대도시에서는 세상을 보는 특별한 방식을 받아들이게 된다. 한 점에 집중하고 있지만 간헐적으로는 선택적인 시각을 갖게 된다. 사막이나 유빙을 훑어볼 때는 다른 눈으로 보게 된다. 전체를 더 잘 보기 위해서 세세한 점들은 초점에서 빼버리게 된다. 사물을 바라보는 이런 방법은 다른 현실을 드러내준다. 이런 방식으로 누군가를 바라보면 계속 바뀌는 일련의 가면으로 얼굴은 녹아버리게 된다.

 

 

 

나는 몸을 쭉 펴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린란드 사람들은 미안해요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굳이 귀찮게 그 말을 덴마크어로 배울 생각을 한 적도 없다.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만 한다면, 기다리면서도 자제할 줄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기다림은 파괴적으로 변한다. 사물들이 미끄러지게 놓아두면, 의식이 동요하기 시작하고 공포와 불안을 깨운다. 우울이 닥쳐오고 자멸하게 된다.

 

 

 

죽음이 나쁜 것은 미래를 바꿔놓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를 기억과 함께 외로이 남겨놓기 때문이다.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대단히 과장된 얘기다. 사랑에 빠지는 것은 상대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으리라는 두려움 45퍼센트와 이번에는 그 두려움이 무색하게 되리라는 광적인 희망 45퍼센트, 거기에 소박하게 사랑의 가능성에 대한 여린 감각 10퍼센트를 더하여 이루어진다.

 

 

 

내게 있어서 태양은 언제나 천체의 광대였다. 내가 의식하고 있는 태양에 대한 첫번째 기억은 금지된 일인 줄 알면서도 실눈을 뜨고 태양을 똑바로 쳐다보았던 일이다.

 

 

 

내가 어렸을 때, 캐터필러 바퀴가 달린 태엽 감는 탱크가 하나 있었어요. 그 탱크를 다른 물건 앞에 놓아두면 낮은 속도로 그 물건을 타고 넘어가죠. 물건이 수직으로 놓여 있으면 탱크는 방향을 돌려서 타고 넘어갈 수 있는 다른 길을 발견할 때까지 가장자리를 기어다닙니다. 멈출 수가 없죠. 당신은 그 탱크 같아요, 스밀라.

 

 

 

내가 어린아이였을 때는 말이죠.

나는 말했다.

아버지가 곰인형을 하나 사줬어요. 그때까지 우리에겐 직접 만든 인형밖에 없었죠. 그 곰인형은 일주일 정도 갔어요. 처음에는 더러워지더니 나중에는 털이 빠지더군요. 구멍이 나고 속이 비어져나왔어요. 속이 없으니 안은 텅 비더군요. 당신은 그 곰인형 같아요, 푀일.

 

 

 

순진함에는 매력적인 면이 있다. 유혹에 넘어갈 때까지는. 순진함이 유혹에 넘어가게 되면 단순히 침울해져버린다.

 

 

 

퇴어크는 갑자기 내게 너무 투명하게 보였다. 어른이 투명해질 때는 언제나 그 안에 있는 아이가 앞으로 튀어나오게 마련이다.

 

 

 

죽음은 언제나 낭비일 뿐이야. 하지만 때때로 사람들을 깨우는 유일한 방법이 되기도 하지.

 

 

 

 

 

 

'others' 카테고리의 다른 글

행성이야기 - 데이바 소벨  (0) 2006.08.09
크로스 게임 - 아다치 미츠루  (0) 2006.08.07
대운하 - 서하  (0) 2006.07.27
어둠의 저편 - 무라카미 하루키  (0) 2006.07.25
달의 방1 - 장석남  (0) 2006.07.25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