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을 즐기는 건, 술을 즐기는 것과 닮아서
물 속에 있을 때는 힘든 줄을 모르다가
물 밖으로 스윽- 문을 열고 나갈 때면
내 몸이 이리저리 열려있고 그 틈으로 잡동사니가 밀려 들어온 것처럼
몸이 묵직-해 진 걸 갑자기 느끼고 비틀거리게 된다.
수영을 한참 하다보면
손바닥도 쭈글쭈글해지고, 눈도 빨개지고, 가슴도 커지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게 변화를 보이는 것은
바로 '고추'인데
하얗게 탈색된 듯한 모습으로 쪼글쪼글해지다 못해
간장 항아리 속 둥둥 떠다니는 하얗게 곰팡이 핀 '고추'같은 모습이라서
- 물론 감각자체도 굉장히 멀어진 느낌이어서 손톱이나, 머리카락 같은 게
혹은 '지난 겨울'이 대신 붙어 있는 듯 하기도 하다.
이것이 도로 제 모습과 기능을 찾을지 살짝 겁나기까지 하다.
내가 열심히 우주를 휘젓고 있으면 내 고추는
지난 겨울이거나 손톱, 간장이었다가
다시 내 고추로 돌아오고는 한다.
수영이 좋은 이유는
빛속에 섞여 흘러다니는 어둠처럼
물속에 섞여 둥둥 무서움이 흘러다닌다는 것 때문인데
아차, 양쪽 다리에 쥐라도 나고 현기증이라도 일어나면
죽을 수도 있는 곳에서 하는 운동이기 때문이다.
이걸, 자칫, 죽음이 실감나서- 라는 정도로 오해해서 받아들이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빛이라는 게 있기 전에는 어둠도 없었던 것처럼
태어나기 전에는 죽음 따위도 내게는 없었을 것인데
이미 태어나버렸으므로 죽는 그 순간까지 내 삶에는 죽음, 그런게
섞여 있는 상태로 살아가게 되는데
자꾸만 그걸 깜빡 깜빡, 망각해버리거나
의식적으로 알 뿐, 감각적으로 느끼지를 못해버리게 되는 일이
반복되면서 남루한 눈빛을 지니게 된다.
그러니까 내게 수영은
눈이 나빠져서 앞이 흐릿한 환자에게 맞춰 준
도수 높은 안경과 같은 역할을 한다.
있으나 자꾸 안보이게 되는 걸 보게 한다.
그 중 하나가 고통인데,
참, 입버릇처럼 사는 게 힘들다, 고통이다, 달고 다녀도
코와 폐로 물을 흡입하며 다리 쥐가 나도록
그러면서도 성과 없이 바둥대다보면
고통스럽다. 몸이 그리고 마음도.
이것은 적당히 앉을 만한 의자에 앉아서
적당히 먹을 만한(때로는 맛있기까지 한) 안주와 함께
술을 들이키며 말하는 '아프다'와는 그 성질이 다르다.
어느 게 더 고통스럽다거나
어느 게 더 감상적이라거나
어느 게 더 인간적이라거나
그런 소리를 할 마음은 없다.
술 취해 거리를 헤집으며 고함을 치거나
깡통을 발로 차고 때로는 소주 병을 집어던지거나
발음이 부정확하고 값싼 냄새가 튀는 욕을 해대고
담벼락에서 오줌 냄새를 맡거나 먹었던 것들을 꽥꽥 도루 뱉어대는 것을
소위 '괴로워서' 라고 말하는 사람들에 대해 뭐라 할 마음도 없다.
수영이 고통스럽긴 하지만 사실 나는 즐거워서 수영을 하는 것이다.
괴로운 이들이 덜 괴로워지고 싶어서 술을 찾는 것처럼.
이상하게도
한국의, 그리고 남자들은
맨 정신에는 괴롭다는 말을 잘 안한다.
취해서도 안한다면 더 좋을 텐데...
나는 늘 크롤영법을 한다.
크롤의 뜻은 포복이라고 한다.
바람개비처럼 팔을 빙글빙글 돌리는 것이 아니라
땅을 기듯이 물을 기어 나가는 영법이다.
다른 말로 자유영이라고 하기도 한다.
물을 벅벅 기면서
물속에다가 욕을 해대면 아무도 듣지 않는다.
바다에서는 물고기가 들을지도 모르지만
동네 실내수영장에서는 귀먹은 할머니들밖에 없기 때문에
아무도 들을 수 없다.
어쩌다가 물 속에다가 비명을 지르거나 괴롭다고 소리쳐도
들리지 않는다.
조용하다.
발장구소리만 텀벙텀벙 울려서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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