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을 경우 둘 중 누구를 택해야 하는가?
이 문제는 아주 오래전부터 사람들에게 반복되서 제시되고 있다.
이 오랜 문제가 아직까지도 문제로써 써먹어지고 있는 이유는
그 대답이 시대마다, 혹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결혼에 있어 감정(사랑)이 중요한가, 현실(돈과 집안)이 중요한가 같은 문제도
여전히 계속해서 문제로 써먹어지고 있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
이 문제들이 마침내 모든이들에게 공통된 답을 이끌어내고
그러므로서 문제로서 가치가 없어 질 때,
하나의 사실이 될 때,
인간은 무엇이다, 하는 것이 보다 분명해 질 것 같다.
예를 들어,
결혼에 있어 불확실한 감정 보다는, 현실적인 안정이 중요하다,가 일반화되면
인간은 그런 류의 것으로 나름 정의 폭이 좁혀질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나를 별로 사랑하지 않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내가 별로 사랑하지 않는다.
누구를 택하는 것이 좋을까.
몇 개의 답안이 나온다.
1.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사귄다.
2. 나를 사랑하는 사람을 사귄다.
3. 둘 다 안사귄다.
4. 둘을 동시에 사귄다.
5. 따로따로 한 명씩 사귀어 본다.
6. 누굴 사귀든 별 상관 없다.
우선은 2번 답안이 좋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택할 경우, 나의 맘 고생은 불 보듯 뻔하다.
반면 2번, 나를 사랑하는 사람을 사귈 경우, 내가 맘 고생할 일은 거의 없다.
뿐더러,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사귈 때보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을 사귈 때
보다 자유롭게 지낼 수 있다.
상대적으로 돈도 덜 든다.
어지간해서는 이 사람이 나를 떠날 일이 없으므로
이 사람과 사귀는 중에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찝적거려 볼 수도 있다.
그러므로 2번 답안은 안전책이고
나의 행복도를 스스로의 노력하에 컨트롤 가능하다.
내 애정을 이 사람에게로 돌릴 경우 꽤 행복한 삶이 가능해진다.
5번 답안도 나쁘지 않다.
다만 순서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사귀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을 뒤에 사귀는 것이 좋을 듯 하다.
아무래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사귀면서 겪은 마음 고생이 있기 때문에
나를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때 가급적 상처를 덜 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아무래도, 사탕을 먹고 쓴 약을 마시기 보다, 쓴 약을 마시고 사탕을 먹는 게
바른 사용법이 아니겠는가.
언뜻, 4번, 둘 다 사귄다가 몹시 좋아보인다.
실제로도 좋다.
플러스 마이너스를 동시에 지니므로 균형이 맞는다.
그러나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둘을 동시에 사귀려면 전반적인 능력이 뛰어나야 한다.
돈도 많아야 하고, 시간도 많아야 한다.
보통은 자신의 시간을 들여서 돈을 얻는다.
그러므로 돈을 많이 벌 수록 쓸 시간은 준다.
그러나 두 명의 여자를 만나려면 시간 또한 두 배로 필요하다.
두 명의 여자를 만나려면 두 배의 돈이 필요하다.
따라서, 한 명의 여자를 만날 때보다 4배의 시간이 필요하다.
돈 버는 시간 * 2
만나는 시간 * 2
이렇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장애를 뛰어넘는 능력이 기본적으로 구비되어야 하고 그 외에도
기타 많은 능력이 있어야 한다.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3번, 둘 다 안사귀는 것이다.
삶은 밤의 벌레먹은 부위를 도려내듯이
두 명의 이성을 기억 속에서 도려내버리는 것이 가장 좋다.
삶이 깔끔해지며, 자주성이 성장한다.
자신의 운명으로 하여금, 자신이 갖고 놀 장난감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는 자세이다.
나는 운명의 장난감이 아니다.
날 갖고 놀 생각 마라.
뭐 하나 부족한 걸 들이밀 생각 마라.
이 방법에서 조심해야 할 점은, 미처 덜 도려내서
암세포가 재발하듯, 미련이 더듬더듬 눈 내리듯 찾아오는 것이다.
마당의 눈을 다 치운 줄 알았건만
어느 아침 문열고 나가려 했더니 마당에 하얗게 눈이 쌓여 있어
울어버리는 꼴이 될 수도 있으므로
자신에 대한 컨트롤에 자신이 없다면(예를 들어 끊고 싶어도 담배 따위를 잘 못끊는 사람)
포기해야할 방법이다.
시대와 사람에 따라 선택의 양상이 달라지는 건 당연한데
요즘 시대에 요즘 사람에 가장 어울리는 건 역시
6번 답안이다.
요즘 시대에 어울리는 요즘 사람이란 비교적 시대를 앞서가는 사람을 가르킨다.
예를 들어, 에디슨이 활동하던 시대를 대표하는 사람은 에디슨이다.
그러나 에디슨의 삶 어디가 보편적이란 말인가.
아인슈타인과 현대물리학자들의 전성기였던 시대에도
당시의 '요즘사람'은 아인슈타인 같은 사람들이다.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새로운 삶의 양식을 지닌 사람들을 요즘 사람들이라고 하는 편이 맞다.
딩크족이나 그런 새롭게 등장한 부류.
왜냐하면 다수의 대중은 이렇다할 변화를 보이지 않기 때문에
별로 시대를 반영한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전화로 약속 정해서 술마시던 것을 핸드폰으로 약속 정해서 술마신다고 해서
그들이 굳이 요즘사람으로 불릴 이유는 없다.
약속에 늦더라도 별 조바심 내지 않는 사람에서
1분만 늦어도 조바심이 나서 핸드폰을 들쑥날쑥하는 사람으로 변했을 때 요즘 사람이라
할 만하다.
그런 류의 테두리에서 볼 경우
요즘 사람이라면 역시 6번 답안을 택해야 한다.
물론, 이 글을 읽는 당신이 그렇게 할 수 없다고 해서 너무 놀라지는 말길 바란다.
요즘 사람이란 사실 요즘을 이끌어가는 사람으로
요즘에 순응해 가는 사람과는 좀 다른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너무 걱정하지 말라.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요즘사람으로서 '아무려면 어때' 그러고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요즘사람으로서 '아무려면 어때' 그러고
이런 일들을, 직접 간접적으로 차츰 겪다보면
당신도 어느새 '아무려면 어때' 하는 요즘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물론 그때쯤이면 그때에 어울리는 답안은 또 바뀌어있겠지만.
이런 식으로 끌려다니는 삶이 싫다면,
그런데 요즘사람으로서의 앞선 의식을 갖기도 쉽지 않다면,
가장 좋은 방법이 하나 남아있다.
1번 답안. 가장 고전적이며 가장 보수적이고 가장 전통적으로 인정받는 방법.
그래서 오히려 촌스럽게 보여지거나
상대방으로 하여금 지치게 하는 방법.
그럼에도 불구하고 답안의 보기들 사이에서 사라질 일은 거의 없을 것 같은 방법.
내가 하면 아름답고, 남이 하면 구질구질해지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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