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처럼 싸가지 없는 인간이, 그래도 나름 가치를 지니고 먹고-
자고- 또 일어나고
누군가 나를 괜찮게 생각해주는 호사를 누릴 수 있는 것은
내게도 장점이라는 게 있어서, 이를 테면
땀에 젖은 돈을 받아들고 덜컥! 느껴버리는 것이다.
서랍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멋대로 덜컥덜컥 덜컥 떨리고 흔들리듯이
맹장 옆에 있는 서랍장가슴이 덜컥 무언가를 느껴버리는 것이다.
10일 쯤 전에 만화방에서 짬짜면을 시켜 기다렸다.
10일 전만 해도 지금보다는 훨씬 더웠다.
쑹쑹대는 에어컨 옆에서 반바지, 반팔, 샌들 차림으로 만화책을 보고 있었는데
배달부 청년(? 34세쯤 되어 보이는..)이 철가방을 들고 다가왔다.
짬짜면을 테이블에 올려 놓고 내가 주는 돈 만원을 받더니
복대 주머니에서 잔돈을 거슬러주었다.
잔돈 천원짜리들은 이 사람 배에서 흘러나와 주머니 속까지 침투한
땀들로 푹- 젖어 있었다.
본래 땀이 많은 사람인 듯, 얼굴이며 목, 어디나 땀이 흥건해보였다.
돈이 꽤 젖어 있어서 지갑에 넣지 않고 테이블 위에 마르도록 펼쳐 놓아야 했다.
내 손에는 그 남자 배에서 빠져나온 땀이 제법 묻었다가
에어컨 바람에 금방 말랐다.
예전, 한창 노가다를 다녀야 했을 때는
그날의 차비나, 인력비 등을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 보통, 노가다를 하게 되는 과정은 이렇다.
새벽 6시까지 인력소에 나간다. 인력소장에게 얼굴 도장을 찍고 기다린다.
미리 들어와 있던 일감들에 맞춰 인력소장이 그날 일꾼들을 보낸다.
그날 들어오는 일감 전화에 맞춰 또 일꾼들을 보낸다.
보통은 일감보다 일꾼들이 훨씬 많다. 이런 것을 불경기라 한다.
IMF 전에는 일감이 일꾼보다 많았다.
그 이후로는 아직까지도 늘- 일꾼이 더 많다.
현장에 가서 노가다 일을 한 뒤 일당을 받는다.
그러면 인력소로 돌아와서 용역비(인력비)라고 해서 대충 10%의 돈을
인력소장에게 준다.
자주 나오는 인부들은, 아침에 미리 인력비를 소장에게 주고
현장에서 받은 일당을 들고 곧장 집으로 가기도 한다.
그러면 일이 끝난 후 다시 인력소로 가지 않아도 된다.
일이 모자라서 결국 그날 허탕을 치게 되는 경우
뺀찌 맞았다고 한다.
일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고, 사람에 비해 모자라는 것이므로
일을 하러 나가는 사람들은 인력소장과 친한 사람이거나
일 잘하기로 인정 받은 사람들이다.
인부들이 현장에 가서 일을 잘 해낼 경우
"00인력소 사람들이 일 잘한다"는 소문이 퍼지기 때문에
그 인력소에 일감이 많아진다.
그렇기 때문에 인력소장은, 이 녀석이 일 잘할 녀석인지를 파악해서
또, 현장의 오늘의 할일이 무엇인지에 맞춰서 일꾼들을 골라 보내고는 한다.
나는 주로 <미장데모도>로 많이 불려다녔는데
그냥 잡부보다 좀 더 기술이 필요하고, 상황에 맞춰 완급조절을 할 수 있어야 했다.
데모도,란 보조를 말하는데 미장이들에게
사모래(시멘트와 모래를 섞은 것)를 만들어 가져다 주고, 물 떠다주고, 벽돌 가져다 주고
대충 그런 식으로 일을 한다.
이것은 미장이가 일하는 방식에 따라 때로는 무척 편하지만
어떤 때는 무지막지하게 힘들다.
예를 들어, 미장하는 현장이 건물 4층인데, 시멘트며 모래가 다 바깥에 있을 경우
바깥에서 모래를 쳐서 시멘트를 섞어서 담아서 4층까지 날라다 주어야 하며,
때로 바닥 미장을 할 경우가 있는데 바닥 미장은 벽돌 쌓는 것과는 달리
시멘트를 퍼부어서 깔기 때문에, 빠른 시간 동안 아주 많은 양의 사모래를 만들어
날라야 하는 것이다.
데모도 한 명에 보통 미장 3~4명을 책임져야 할 때가 많기 때문에
여기 저기 흩어져 일하는 미장들의 상황에 맞게
3~4명에게 이것 저것을 해줘야 하기 때문에 정신 없이 뛰어다녀야 할 때도 있다.
일은 잡부에 비해서 힘들지만, 그래도 계속 데모도를 했던 이유는
우선 돈을 약간 더 받을 수 있고(5천원~1만원 정도)
데모도를 잘 한다는 말을 듣는 사람은, 뺀찌맞을 걱정을 안해도 되기 때문이다.
나는 학생이었고, 학생들 중에는 데모도를 가장 잘하는 축이었기 때문에
(일이 없어 뺀찌 맞을 경우, 대부분 학생들이 그 대상이 된다, 일도 능숙하지 못하고
아무래도 다른 아저씨들처럼 직업으로 하는 분들을 배려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데모도 일이 전날 들어오면 미리 인력소장은 나를 염두에 두고 있고는 했다.
이때, 지갑은 항상 두고 다녔는데
일을 하는 동안 주머니에 넣어두면 거추장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인력비와 차비 만 원 정도만을 주머니에 넣고 새벽에 방을 나서고는 했다.
그래서... 일을 마치고 나면 주머니 속에 들어있던 차비와 비상금은 언제나
땀에 흥건해지고는 했다.
땀에 푹 젖은 돈은 <아...씨발...> 이라는 소리를 내고는 했다.
ps.
인력소라는 것이 생기기 전에는 <인력시장>이 있었다.
옛날에 박상민(?)인가 하는 배우가 출연했던 드라마 <인간시장>에 자주 나오고는 했다.
영화 <신데렐라맨>에서 사람들이 새벽에 잔뜩 몰려 철망 앞에 붙어 있으면
감독관이 너, 너, 너, 그리고 너! 하고 일할 사람을 집어 내는 데
그런 식으로 그날 일할 사람들을 데려가고는 했다.
나도 인력시장을 경험 한 적은 없다.
하지만 그 분위기만은 인력소에 고스란히 묻어내려오는 것 같다.
일감을 기다리며 나와 있는 인부들은 대학생부터 70넘은 할아버지까지 다양한데
보통은 40~50대가 가장 많다.
이들은 그저그런 옷차림으로 앉아, 6시 뉴스나 보면서, 초조하게, 혹은
별 것 아닌 농담을 하며 그날의 오더를 기다린다.
아직, 잠이 채 깨어나기도 전, 그러니까 슬슬 의식이 밝아지고 있을 때
내가, 이곳에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 아주 몹시 울적해지고는 한다.
그때는, 오직
또 다른 젊은 녀석들, 도무지 적응 못하는 표정과 옷차림으로
쭈삣거리며 앉아있는 나와 같은 대학생들만이 위안이 되고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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