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두드러지는 특성 중 피해의식이 있다고 한다.

그것은 어떤 현상에 대한(고통으로 비롯한 거겠지?) 원인을 타인이나 바깥에서

찾는 경향을 말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건 이상한 일은 아니라고 본다.

 

왜냐하면, 괴로움이나 사건, 사고의 원인을 파들어가다 보면

언제나 외부요인과 얽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자기요인은 무시하거 외부요인만 중요하게 본다는 건데

사실 내가 그렇게 보고 있다.

 

왜냐하면 난 이미 나를 '좋은 녀석'으로 보고 있지 않기 때문에

내게서 발견되는 나쁜 요인들, 상황을 부정적으로 만드는 요인들은 그저 - 당연한 것-

이기 때문에

그리 탓하거나 바꿀 필요를 못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어떤 문제점에 있어서 내부 요인과 외부 요인이 있을 경우

난 이미 내 내부요인을 다 인정한 상태이니까

굳이 더 들쑤실 필요는 없는 것 같다고 여긴다.

 

반면, 내가 보기에 외부 요인이 분명히 발견되는데

이 외부요인들은 그럴듯한 핑계나 권력, 혹은 교육 등을 통해

문제점을 그리 인정하지 않는 모습이어서

난 그 인정하지 않으려는 점의 사실을 좀 더 캐내고 들춰내고 싶어 지는 것이다.

 

다시 말해, 너나 나나 한통속인데 어째서 너만 좋은 평가를 받는 거지?

라는 식으로 외부 요인을 바라보는 것 같다.

 

예를 들어, 내가 도둑질을 했다고 가정하자.

그렇다면 나는 도둑질을 한 사람이며, 도둑질을 가끔 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도둑질=나쁜 것, 이라는 입장에서 나는 책임감을 느낀다.

나=나쁜 짓을 한 사람에 인정할 수 있다.

 

그런데(갑작스런 비약이긴 하지만 예의 효과를 극대화 하기 위해서)

예를 들어

신이 존재한다면,

신=전지전능한 자, 이므로

신은 나를 도둑질하지 않는 자, 로 만들 능력이 있는 자이다.

그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건, 내게 별 관여하지 않았건 간에

전지전능한 능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도둑질하지 않는 사람으로, 혹은 도둑질 하지 않는 상황으로

만들 수 있다.

 

신이 존재한다.

신은 전지전능하다.

라는 두 개의 명제가 참일 경우

그는 나를 도둑질하지 않는 사람으로 만들 수 있다. 또한 참이다.

 

그러므로,

내가 도둑질 하지 않을 수도 있었는데도 도둑질을 한 이유로 비난 받을 경우

그 또한(존재한다면) 도둑질을 하지 않게 할 수 있었는데도 하게 (유도 혹은 방치 혹은 명령)하였다는 이유로 비난받아야 한다. 

 

그렇다면, 신을 믿는 사람들에 한해서

도둑질을 한 사람을 비난 할 때는 신을 함께 비난해야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신을 믿는 자들의 경우

도둑질을 한 사람을 비난 하는 경우라 하더라도

신은 비난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신에게는 우리 인간이 모르는 어떤 의도나 뜻이 있기 때문에

그가 도둑질을 막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비난해선 안되기 때문이다,

라고 상습적으로 그들은 말하고는 한다. 

그런데 이 말에는 모순이 있다. 

 

그렇다면

그 도둑질을 한 인간의 뜻이나 의도는 모두 알고 있다는 말인가?

하는 의문에 따른 모순이다. 

 

우리가 알 수 없는 의도나 뜻을 지니기 때문에 그 행위(또는 무행위)를 비난 할 수 없다면 

도둑질을 한 인간의 의도나 뜻도 알 수 없을 경우, 비난 할 수 없으며

당연히 인간은 다른 인간의 의도나 뜻을 진정으로 알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현상에서 분명하게 목격되는 것은 오직 한 가지이다.

차별.

신은 신이기 때문에 이러이러한 것이 의심스럽다 하더라도 비난 할 수 없으며

인간은 인간이기 때문에 이러이러하다면 이러이러한 비난을 할 수 있다. 라는

근거 없는 차별.

이 차별의 근거는 기껏해야, '신은 전지전능하시며 선하시기 때문에'라는 모호한 짐작 뿐이다

이 근거의 질이 어떠하고를 떠나서,

이것이 인간이 차별을 감수해야 할 이유가 되지는 못한다.

 

그리고 이런 차별을 자연스럽게 묵인하는 태도는

자연스럽게 인간 사회 곳곳에도 반영이 되고는 한다.

 

아버지한테 어떻게 그런...

어머니한테 어떻게 그런...

선생님한테 어떻게 그런...

회장님한테 어떻게 그런...

경찰관한테 어떻게 그런...

선배한테 어떻게 그런...

 

이른바, '어떻게 그런'이라는 고귀한 방정식의 탄생이다.

인류는 이런 것을 이뤄낸다.

 

나는 사람이 지닌 이른바 제 2의 원죄의식이란, 되물림이 아닐까 싶다.

아버지한테 어떻게 그런, 방정식에 대한 이해가 없는 상태에서

자식을 잉태하는 행동을 하는 인간, 을 어떻게 다들 용납할 수 있는 거지?

등등의 사회, 외부요인들에 대한 불안과 부정이 발화되고는 한다.

 

그리고 이런 나의 성향을 테스트하면

피해망상 성향, 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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