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

고백이라는 말

어려서부터 내가 무척 좋아했던 말이다.

 

 

 

사람 상대를 잘 못하고, 원하는 것이 있어도 말 못하는 소년이었던 나는

고백다운 고백은 아직까지도

잘 되지가 않는다.

 

 

 

남자만 고백하란 법 있어? 사랑은 쟁취하는 거야. 라고 생각하는 당찬 여성이

등장하는 만화책에 영향을 받은 나는

기다렸다. 누가 내게 고백해주기를.

 

 

 

그것은 그저 만화책일뿐, 현실에는 그런 여성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스스로 먼저 고백하는 여성이라면 필연적으로 나를 좋아하지는 않게 되는 것인지

암튼, 무려 25년이 지나는 동안 나는 한 번의 고백 뿐이 받지 못했는데

그것은 나의 어머니로부터의 고백이었을 뿐이다.

 

 

 

25세, 피 끓는 청춘의 나는 드디어 한 여성에게서 고백을 받았는데

그 여성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아 사귀지는 않았다.

 

 

 

아마도 세상에는 고백하지 못한 감정이 더 많이 떠돌 것이다.

고백하고 싶은 감정이 생겨나고 자라기도 했는데, 그래도 결국 말하여지지 못한 그것들은

불쌍한 것들이다.

때로 세상이 불쌍해보이거나 그런 것은 이 불쌍한 것들이 배회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어젯밤 늦게 춘천에 내려왔다.

어제 오후 부사장 면접을 끝낸 뒤, 집에 들러 옷을 갈아입고 바로 내려온 것이다.

밤기차를 타고 서울에서 춘천까지 오는 동안

결코 잠들지 못한 적은 이로써 두 번째인 것 같다.

이유는 딱히 모르겠다.

 

 

 

세상을 놀린다고 생각했으나 사실 내가 놀림당하고 있었다, 어느새.

세상을 속인다고 생각했으나 실은 내가 속임 당하고 있었다, 예전부터.

 

 

 

대학 4학년 때, 졸업을 앞두고 내 생의 계획은

만화가게 같은 데 취업해서 먹고 살 정도의 돈만 받으며 한가롭게

지방, 지역생활을 즐기는 것이었다.

 

 

 

그 또한, 나름의 풍미와 맛, 그리고 무엇보다 여유로운 적성에 맞을 것이었겠으나

자칫 낙오자로 보일 염려가 있었다.

적어도, 그런 남자를 부러워할 이들은 별로 없겠지.

 

 

 

그리하여 내린 결론은

그래, 너희들이 부러워할만한 직장에 가서 생활해 주마.

그 뒤에, 너희들이 부러워할만한 그것을 헌신짝처럼 때려치우고 나와주마.

그리고 나서, 비로서 만화책방에 가서 본래의 꿈을 이루리라.

그로인해 나는 진정한 자유를 느끼리라, 자칫

도피자 혹은 패배자 혹은 낙오자가 아닌

승리자, 승리하여 버린자가 되어야 겠다.

 

 

 

사실, 국문학과 사람들에게는 유명 작가가 된다거나 등단 한다거나,

학자가 되는 것을 선망할 지언정

좋은 직장에 취업하는 것을 선망하지는 않는다.(적어도 내가 아는 국문학과 사람들은)

그러나, 내가 복수전공한 광고홍보학과의 사람들은 다르다.

그들은 대학 지원할 때부터, 졸업 후의 직장이나 직업을 고려한다.

세상을 사는 방식이 다른 것이다.

 

 

 

그렇다면 카피라이터가 되자.

광고를 전공하는 한국의 수많은 대학생들이 부러워하도록 광고회사에 들어가자.

그리고 잘 나가자.

그리고 나서 버리자.

 

 

 

그리하여, 졸업 후 1년 반만에

어제, Mccann의 부사장 '크리스'와의 최종 면접이 있었고

어젯밤 메일 통보를 받았다.

 

 

 

잘된 것 같다고. 추석이 지나고 나오라고.

 

 

 

그리고 오늘, 한림대학 광고홍보학과 교수들을 쭈욱 찾아다녔다.

Mccann에 입사한다고.

 

 

 

그러면, 내가 수업을 들어온 경험상

입사 사례로서 교수들은 수업 시간에 내 얘기를 할 테고

맹목적으로 메이져 대행사 취업에 경탄하는 광고홍보학과 학생들은

그러한 나를 부러워할 것이니까.

 

 

 

느낄 수 있겠지만

광고홍보학과를 복수전공하는 동안에 느낀 것들 중에는

이들이 밤을 세워 열심히 한다는 것, 같은 좋은 점들도 있지만

학생일까? 이들이? 하는 회의도 많이 있었다.

 

 

 

복수전공 이전의 나는 상당히 국문학도다운 학생으로서

왜 살아야할까,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나는 무얼까, 사람은 무얼까

이런 것들을 꾸욱 껴안고, 나는 학생이니까 이런 것들을 여기서 배워야지,

하였던 것인데.

이쪽의 학생들은 1학년 때부터 졸업 때까지 줄곧

진로, 진로, 진로에 치중하는 모습들...

 

 

 

나는 불만 없이는 살 수 없는 생명체이기 때문에

그런 이들에 불만, 놀리고 싶은 욕구가 크게 자랐다.

이들이 욕심 내는 자리를 내가 차지하고, 그 뒤에 버린다.

이렇게 놀리려는 속셈이

마침내 얼마간 이루어지게 되는 순간이었다.

 

 

 

세계 4대 광고대행사 중 하나인 Mccann에 들어가게 되었으니.

(물론 내 힘으로라기 보다는 주변 분들의 도움과 운의 도움이 컸지만)

 

 

 

역시나, 감탄하는 윤모 교수.

(다른 교수들은 학교 축제 기간이라 학교에 나오지 않거나 연구년이었다)

어느 정도 앞가림을 하게 된 후에는

학교 후배들을 많이 도와 달라고 하신다.

 

 

 

고백하건데,

이건 아니었는데.

 

 

 

오늘의 나의 모습은 마치

메이져 광고 대행사를 염원하던 광고홍보학과의 학생과 같아서

들뜨고, 신나고, 자신이 자랑스럽고, 그러다가 우스워졌다.

 

 

 

자기 재주에 자기가 넘어간 걸까, 싶은.

 

 

 

내가 과연 이 직업을 버릴 수 있을까,에 대한 불안이

깊다.

 

 

 

크리스,와 영어 인터뷰를 하면서

토익점수 400점이 되지 않는

단어나열어법의 나는

광고에 대한 내 애정을 고백해버리는 것이었는데

국제언어로

다행이 차이지는 않았는데 그것은 역시

말은 유치원생이어도 진심은 통했다는

진심

내 진심은 사실

크리스 부사장에게 털어놓았던 그것?

 

 

 

아무튼

팔리는 시집 한 권과

대박을 트뜨릴 것이 분명한(그러면서도 도움이 안 될 것도 분명한) 광고서적(카피에 대한)

한 권을 내기 전까지는

앞으로 계속

내 진심은

광고에 있지 않을까?

 

 

 

아닐까?

 

 

 

애초에 내가 졸업 후의 내 꿈을 진지하게 얘기 했을 때

지방도시의 만화가게에서 라면 끓여주고 카운터 보면서 시나 쓰면서

사는 것을 얘기 했을 때

그들이 나를 비웃지 않았다면......

 

 

 

 

 

 

 

 

 

 

 

 

 

ps. 어제 춘천에 내려와서

나보다 9살이 어린 한 국문학과 후배를 만났는데

이 후배의 꿈을 물어보니

사마귀가 되는 것. 이라고 하여 가슴이 찡-했다.

유전 공학의 발달 등으로 인하여 언젠가 자신은 사마귀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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