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상상임신
박연준
그렇지만 아버지
자꾸 배가 부풀어 오르고, 손가락이 부드러워져요
미안해요
당신의 아이는 아니에요
우뚝 서 있는 나의 병정, 저 초로初老의 남자,
눈썹이 흰 소나무와의 키스로
나는 단 한 번에 여자가 됐고
머리칼이 하늘을 향해 울부짖으며, 펄럭이는 순간
맨 땅에서, 두 발을 비비며 수태했어요,
당신의 아이는 아니지만
우리의 피보다 깨끗한 뱀들의 씨앗이에요
뱃속에 열 갈래 길이 생기고, 나는 웃어요
내 몸에 악착스레 붙어있는 당신 손들
빨판처럼, 달려들면서 뭉개지는 당신 눈동자
당신의 시퍼런 넋이 내 온몸에 씌었지만, 어쩌죠?
나는 뒤돌아 웃어요
웃으며서 수태해요
당신의 아이는 아니지만
기쁘게,
부풀어 올라요
밤은 휘어지고
나는 온힘을 다 해 당신을 벗어나며
내 허리춤에도 못 미치는 당신을 밀치며
떠올라요
떠올라, 웅장한 달이 되어요
육중한 어둠과 살을 섞으며 천천히,
나는 가까스로-밝아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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