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이 최강의 만화가 있었으니 그것도 한 두 편의 작품이 아니었다.

그 중에서도 불굴의 최강인 만화가 있었으니 <요츠바랑>과 <아즈망가대왕>이 그것이다.

 

그 사람이 되어보지 않은 이상, 그 사람의 외형을 보고서

그 사람이 행복한 지를, 그 사람의 삶이 아름다운 것이었는지를 판단하기란 어렵다.

 

그러나 간혹, 그러한 것이 짐작되는 사람이 있으니

<요츠바랑>이나 <아즈망가대왕> 같은 눈부신 만화를 보고 있으면

이것이 나와는 전혀 다른 세계의 누군가가 정녕 만들어낸 이야기와 그림인가, 하고 생각하고 있으면

내 삶이 참 보잘 것 없어지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이것은

단지 연봉 10억이나 20억, 차가 몇 대, 수 명이 몇 살, 100m 금메달과 같은

일정의 과정과 동일한 조건 속에서 달성하는 종류의 감동이 아니라

그 사람 인생 자체로 스스로 만들어낸

그야말로 밑도 끝도 없는 감동이기 때문이다.

 

단지, 밥을 먹는 포즈나 사소한 버릇 등으로부터도 그 사람의 인생의 단면을 유추해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작품을 본다는 것은,

그 작가의 사람다움을 추측하게 된다는 것인데,

이 작가의 사람다움이 내가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것들에 비추어볼 때,

이전까지 없었던 듯, 혹은 가졌더라도 이미 다 잃어버린 듯 한 그것일 때,

어찌나 부러운지.

 

<요츠바랑>, <아즈망가대왕>은 악인이 등장하지 않는 만화.

이상적인 인물들의 이상적인 나라, 동네, 그것을

누구나 가졌었음직한 동심과 엮어 뛰어나게 형상화낸다.

 

소위, 천국이다.

 

이 작가의 만화책은 이를테면 '천국에 이르는 길'을 보여준다.

 

그건 그리 어려워보이지 않는다.

실제로 이 작가가 보여주는 천국에 이르는 길은 '살아서 이르는 길'로서

나와 같은 불신론자(이 또한 신에 대한 믿음의 한 형태라고 하지만서도...)의 눈에는

성경보다 훨씬 뛰어나고 다정해 보인다.

 

문학,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보자면 이 작품들은 헛된 작품들일 지도 모른다.

현실의 긍정적인 면만을 아름답고 귀엽고 아기자기하고 훌륭하게 재창조하는 듯 하지만

부정적인 면 따위가 전혀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 구조적인 면, 창의적인 면을 떠나서 '작품'으로 바람직하게 인정되지 않을 지도 모른다 .

 

그러기에, 만화다!

 

이 만화가의 뛰어난 점들 중, 이를 테면 만화 초보 독자들이 보기에 미쳐 깨닫지 못할 수 있는 점을

하나 언급하자면 구조적인 미美와 구조적 완성도이다.

 

이를테면 <요츠바랑>은 한 권에 보통 4회 분량 정도의 에피소드가 들어 있는 구성이다.

예를 들어 <요츠바랑4권>에서 요츠바가 '쓰름이' 복장을 하고 동네를 활개치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이 에피소드 마지막에 방에 붙어 있는 요차바가 오래 전에 크레파스로 그린 '쓰름이' 그림이

보여진다. 그럼으로서 독자들은, 아~ 이 요츠바가 하고 다니는 그 복장이 이 녀석이 그린 그

쓰름이였군~ 하고 이해한다. 놀라운 점은 여기서 이 요츠바가 그린 쓰름이 그림이

이번 에피소드에서 그린 것이 아니라, 훨씬 이전의 에피소드 중에 잠깐 등장했던 장면의 그림인 것이다.

 

이를테면, 낚시여행을 다룬 에피소드에서 요츠바가 그렸던 쓰름이 그림이, 몇 회 뒤에

쓰름이 에피소드를 다룬 장면에서 중요한 키,로 재 등장 하는 것이다.

물론 이 몇 회 전에 등장했던 이 장면을 기억하지 못해도 내용상 전혀 문제는 없는 구성이다.

그러나 그것을 기억하고 있던 사람이 이 부분에서 그 이전 장면을 떠올리면

그야말로 무릎을 탁, 치는 것이며

작가가 이 작품에 대해 얼마만큼 애정을 지니고 있는 지를 알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신의 작품을 읽는 독자가 알아주지 못할 수도 있는 장면을

독자를 믿고, 또한 독자에 연연하지 않고, 질 높은 구성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어떤 요리사가 자신의 요리를 얼마만큼 좋아하는지는 결국

그 사람의 요리를 먹어보면 안다.

또한, 요리와 만화같이 사람에게 감동을 주려는 목적이 있는 제작물이라면

이것을 만든 사람이 이것을 만드는 것에 대한 것 뿐만 아니라

사람 자체에게 얼마만큼 애정을 갖고 있는지가 그 만들어진 것에 의해 드러난다.

 

그러나, 그런 것들을 보기란 쉽지 않다.

 

그것은 <요츠바랑>과 <아즈망가대왕>에 '천국으로 이르는 길'이 뚜렷이 나와 있음에도 불구하고

책을 덮고 5분이면, 절망하게 되는 나의 모습을 통해 다시금 확인 된다.

 

그것은 결국은 애정이다.

흔하고 그저 그렇고 상황에 따라 흔들리고 교묘하고 타협하는 애정이 아니라

순수한 애정인데,

지금 써놓고도 내 몸에 닭살이 돋는 것과 같이

'순수한 애정'이란 그 말을 그대로 써서는 결코 순수한 애정이 될 수 없는 그런

무지막지 어려운 감정이며 가치관이다.

 

그게 여기엔 있다.

<아즈망가대왕>과 <요츠바랑>.

이 만화의 작품성을 떠나서 작가에 대한 감탄을 금할 수가 없다.

적어도 이 만화를 만들어가는 동안, 이 만화 속 세계 속에 있는 작가는 거의

인간의 경지를 넘어서 있는 듯 깨끗하다.

 

나는 결국 패배감을 느낀다.

 

이 패배감을 지우거나 이겨내거나 덮어내기 위해서 결국

나는 또, 실질적으로 비교되는 통로 속에 내 손자국을 내기 위해 안들을 할 것만 같다.

연봉이나 회사, 자동차, 유명세 등등.

 

내가 남들이 못하는 무언가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은 놀랍고 흥분되는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뛰어날 수는 있을 망정, 애정으로 비롯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

나를 말해주는 것 같다.

 

그러므로 나는 또, 나보다 못난 사람들을 찾아 이들을 비웃어 주는 낙으로

몇 해를 더 살게 될 지도 모른다 . 

이를 테면, 불행한 결혼 생활을 하는 친구들 같은...

 

그러므로, 결혼한 이들은

나같은 이로 인한 괴로움과 비참함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보다 행복해 지길 바라며, 결혼을 앞둔 이들 또한 그러하며

여자 친구가 있으면서도 불만족스런 남자들 또한 그러하며

남자친구가 있으나 완전히 사랑받지 못하는 여자들 또한 그러하길 바라는 바이다.

 

우하하하.

이런 쪽의 면에서만 걸어가는 골목이 있다면

나는 무적이다.

 

'악의'에 있어서는 나도 순수하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