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방이다.
사실 personal computer방이라면, 개인용 컴퓨터 방이어야 하는데
늘 공용으로 사용되고는 한다.
누군가 이용 다 한 컴퓨터를 뚝- 떼어 들고 훔쳐가는 꼴을 보아야
속이 시원해질 것 같다.
옆에 남녀 커플이 카트라이더 게임을 하고 있다.
여자가 책상을 쿵-! 치며 소리를 지른다.
"이길 줄 알았는데!!"
내가 초등학교 5학년 즈음에 추석에 시골에 가면
그때 고등학생이었던 형은 늘 좀이 쑤셔했다.
그래서 형 따라 1시간 반을 걸어가면 나오는 곳이 죽산 시내였고
그곳에 단 하나뿐인 오락실에서 형은 오락을 했다.
그때도 난 오락을 하는 이 사람 저 사람들을 구경하곤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기본적인 풍경은 비슷하다.
사람들은 줄줄이 한 방향을 향해 앉아 있고, 현실의 자신을 일탈하고
"이긴다", 는 착각을 즐긴다.
게임의 기술적 진보는 눈부시나
본질적 진보는 더디디 더딘 수준이다.
기본적으로 게임은 승리와 패배를 즐기는 놀이이다.
아직까지도 대부분 승리를 즐길 뿐
패배를 즐길만한 게임은 만들어지지 않은 듯 하다.
사실, 패배-를 즐기는 게임의 스토리는 어떤 식으로 구성되어야 할런지 잘 모르겠다.
이를테면, '적응게임'의 형식이 되려나?
어떤 면에서 오락, 게임은
오락실, 게임방에서 하는 그 평면 속의 그것이라기 보다는
그 오락을 '즐긴다'고 생각하는 이들을 바라보는게 오락이고 게임인 것 같다.
'인생'이라는 관념과 '즐긴다'고 하는 관념, 그리고 '생명'이라는 존재가치와 '시공간'이라는 질료
그 외에 가족이나 교육, 전쟁, 사회, 문화, 환경, TV, 인터넷 등등의 옵션들...
나는 늘 명절이나 크리스마스 같은 때가 다가오면
나도 모르게 설레거나 두근거리고는 했는데
그러면서도 늘 그렇듯이
만화방, 게임방, 카페, 극장 이런 곳을 배회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만다.
혹은 이동 중인 차 안에서 졸고 있거나.
가끔씩 달은 '난 뭐든지 다 알고 있어' 하는 눈빛으로 사람들을 내려다 본다.
그것은, TV나 게임, 매체들, 지도자와 교육자들이 제 아무리 기를 쓰고
추석이란 이런 것이다, 라고 주입하더라도 어쩔 수 없는
인간 너머의 힘이다.
그래서 인간은 달 앞에 불안하고
자꾸 무언가를 하고 있어야 할 듯, 조바심이 난다.
달이 내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면, 난 정말이지 더이상 무얼 할 수가 없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추석은 그냥 그렇다.
누구 하나 찾아오지 않는 외지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다 마침내 누군가가 찾아오는 그런 날이라고
여겨지는 환경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닌 이상에야, 어제와 다를 바가 그리 없다.
그런면에서 차라리 군대에 있을 때가 더 추석다웠다는 생각이 든다.
귀하디 귀한 쉴 수 있는 날인데다가
음식도 좀 다른 것이 나오고
평소보다 조금은 더 서로를 안쓰러워했으니깐.
추석인데 추석인데 그래도 추석인데
하고 애쓰는 건 다름 아닌 추석에 대한 오해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그럼에도 그래 그것은 오해였어, 하고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아무런 욕구와 불만도 없이 그렇게 쉽게 받아들이고 말았다가는
정말 한 순간에 가차없이 늙어버릴 것만 같아서이다.
추석이 몹시 뜨겁거나 매우 차가운 것이 아닌 것일지라도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어떤 것이어야만 하지,
대놓고 미지근한 것, 아무 것도 아닌 것이라고 해버리긴 곤란하다.
그랬다가는 비늘 한 장 떨궈놓지 못하고 통째로 집어삼켜지는
가을 전어 꼬라지가 되고 말 것이다.
술이라도 한 잔 하고
무릎이라도 몇 번 문질러봐야겠다.
무릎을 문지르기에는
마루에 걸터 앉을 수 있는 그런 집이 최고인데, 요즘은 통 그런 집 마루에
걸터 앉아 본 적이 없다.
그래서 그런지 어렸을 적에 비해 무릎이 많이 상했다.
그래도 달빛을 쬐며 무릎을 문지르는 기분은 여전하다.
그래도 이럴 땐, 아 이게 추석이구나 싶다
아참, 여긴 PC방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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